“마라톤 선수인 ‘늘공’(늘 공무원의 준말로 직업 공무원을 지칭)을 100m 스프린터로 뛰게 하면서 쌓인 피로 등 모든 것이 조직구성원의 사기를 약화시키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0일 직원 월례조회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면서 스스로 감정에 복받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약칭)인 본인이 장관으로 와 늘공을 너무 혹사시키고 있는 것 아닌지 반성한다는 뜻에서 한 말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공정위 조직 사기진작 방안’을 발표했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5년마다 장기 휴가를 주고, 과장급 이상 간부의 리더십 고취를 위한 다면평가제를 도입할 것 등을 약속했다. “열정과 소신을 바쳐 도전하고 큰 성과를 이뤄낸 직원에게는 특별승진, 유학 기회 등 인센티브를 적극적으로 줄 것”이라며 “산하기관 및 유관기관과의 교류를 넓혀 직원들의 재충전, 재축적 기회를 확대하겠다”고도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최근 검찰 수사와 과다한 업무량으로 떨어진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위원장이 마련한 자리”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6월 취임 이후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을 비롯해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 등 굵직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직원들을 매섭게 몰아붙였다.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과 관련한 심사 결과를 뒤집는 등 과거와 정반대 결정을 내리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 와중에 재취업 비리 관련 검찰 수사로 전·현직 수뇌부들이 잇따라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올 하반기 들어 공정위에서 타 부처로 전출을 희망한 사람이 전체 직원의 10%인 60여 명에 이른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이날 사기진작 방안 발표와 관련해 관가 일부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도 나온다. 한 부처 관계자는 “재취업 비리를 광범위하게 저지른 것은 명백히 공정위가 잘못한 것이며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마땅하다”며 “직원 달래기도 중요하지만 김 위원장의 행보가 자칫 자체 개혁 의지를 꺾는 효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