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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은 그동안 우리 스크린에서 볼 수 없었던 고구려 전투를 담았다. 고구려말, 당태종 이세민과 안시성 성주 양만춘, 그를 따르는 성민들의 치열했던 88일의 기록은 사실 역사서에도 자세하게 나와 있지 않다. 김광식 감독 스스로 "사료가 부족해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고백했을 정도.
하지만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사실들은 김광식 감독의 고민과 상상력으로 살이 붙어 살아났다. 양만춘(조인성 분)을 비롯해 안시성 성민 각각의 캐릭터들이 갖는 서사는 단조로울 수 있는 전쟁 이야기에 변주를 줬다. 파소(엄태구 분)와 백하(김설현 분)의 로맨스, 명령과 신념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물부터 신스틸러가 된 우대(성동일 분)까지 작은 캐릭터 하나하나 각자의 사연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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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무릎 꿇리는 영웅이 아닌, '형님'같은 리더십을 선보이며 '명량' 이순신과는 다른 장군의 모습을 제시했다.
캐릭터들이 탄탄하게 살아있어도 전쟁 영화의 특성상 나열식으로 흘러가는 단조로운 구성은 피할 수 없다. 여기에 신파까지 가미됐지만 고개는 돌아가지 않는다. 그걸 만회할 만큼 화려한 볼거리가 있기 때문. 20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압도적인 스케일과 새로운 비주얼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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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대지와 공성, 토산 등 장소에 변화를 주고, 낮과 밤으로 변주를 더했다. 단순히 사다리를 끌어 내리고 불화살을 쏘는 액션을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트로이 목마를 연상시키는 다채로운 전쟁 무기들은 허를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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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만의 전투가 아닌 여성들로 구성된 백하부대의 활약도 이전의 전쟁 영화와 다른 포인트다. 남자들이 칼을 들고 싸우고, 여자들은 치마로 돌을 옮기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 같이 갑옷을 입고 활을 쏘고, 말을 타는 액션은 또 다른 쾌감을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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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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