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30초 영화제’ 시상식이 열린 28일 서울 재동 헌재 대강당에서 이진성 헌재 소장(맨 뒷줄 왼쪽에서 여섯 번째)과 김기웅 한국경제신문 사장(일곱 번째)이 수상자들과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헌법재판소 30초 영화제’ 시상식이 열린 28일 서울 재동 헌재 대강당에서 이진성 헌재 소장(맨 뒷줄 왼쪽에서 여섯 번째)과 김기웅 한국경제신문 사장(일곱 번째)이 수상자들과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손가락을 다쳤는데도 정비소 직원은 깁스(캐스트)를 한 채 묵묵히 고장난 자동차를 고친다. 가방을 챙겨 퇴근하려는데 상사는 처리해야 할 서류 뭉치를 책상에 던져 놓는다. 그리고 카페에서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는 여성의 다리를 몰래 찍는 카메라로 화면이 넘어가는 순간,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17조가 자막으로 뜬다. 함께 등장한 판사봉에 붙은 노란색 종이엔 ‘찍히지 않겠습니다’라는 글이 쓰여 있다.

곽일웅·공승규·민주홍 감독이 헌법재판소 30초 영화제에 출품한 영상 ‘헌법은 동행입니다’의 시작 부분이다. 이 작품은 28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열린 영화제 시상식에서 통합 대상을 받았다. 헌법이 대한민국 최고의 규범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영상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세 가지 사례를 들어 헌법 제17조뿐 아니라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31조,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10조를 소개한다. 헌법 조항을 차례로 언급하며 앞서 보여준 장면들을 역순으로 짚어가도록 구성했다. 해당 장면마다 ‘사장님 병원 다녀올게요’ ‘먼저 퇴근합니다’ 등의 문구를 쓴 센스 있는 쪽지도 높은 평가를 받는 데 기여했다. ‘헌법은 국민과의 동행’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법복을 입고 환하게 웃는 등장인물의 모습으로 마무리한 부분도 잔잔한 감동을 전해준다.

알기 쉽게 풀어낸 헌법의 가치… 헌법 130개조, 일상으로 소환되다
헌법재판소가 주최하고 한국경제신문사가 주관한 이번 영화제의 주제는 ‘헌법은 [ ](이)다’였다. 다음달 1일 헌법재판소 창립 30주년을 맞아 열린 이번 영화제는 우리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헌법과 헌법재판소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마련했다. 어렵고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헌법 및 헌법재판소에 관한 이야기를 쉽고 간결하게 표현한 작품이 많았다. 일반부에 206개, 청소년부에 155개 작품 등 총 361편이 응모했다.

국민의 권리와 의무, 통치기관의 구성과 조직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이 국민들의 약속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우리 일상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이어질 수 있는 데 큰 역할을 하는 헌법과 헌법재판소의 존재 이유를 담은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이 가운데 대상을 포함한 일반부 6개 작품, 청소년부 4개 작품 등 총 10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일반부 최우수상을 차지한 최슬기 감독의 ‘마땅히’는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더욱 알기 쉽게 접근했다.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면 등장하는 방패이자 권력을 견제하는 칼의 역할을 헌법이 한다는 점을 그림으로 알려준다. 헌법재판소가 올해 탄생 30주년을 맞는다는 점도 상기시킨다. 30년 전 초심, 그리고 처음 헌법재판소가 생겼을 때의 취지를 떠올리면서 ‘헌법재판소는 성장하는 중이고 앞으로도 그 권위를 유지해 갈 것’이라는 바람도 보탠다. 그저 종이에 쓴 글귀가 아니라 우리가 지키려고 노력할 때 실재하는 헌법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청소년부 최우수상을 받은 우자미 감독의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이다’는 연이은 질문으로 답을 찾아간다. ‘대한민국 헌법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헌법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헌법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한 답은 모두 같다. 바로 ‘국민’이다. ‘헌법은 곧 국민’이라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다른 연령, 다른 환경, 다른 성별의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답을 듣는다. 답을 먼저 공개하고 질문을 던지는 되감기식 편집으로 궁금증을 자극함으로써 몰입도를 높였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 감독의 의도를 잘 살려냈다.

이날 시상식에는 이진성 헌법재판소 소장과 김헌정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한국경제신문 김기웅 사장과 조일훈 편집국 부국장, 수상자와 가족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가수 청하가 축하공연 무대에 올랐다. 통합 대상 500만원 등 수상자들은 총 1000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