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옷 입고 올리는 홈카페 레시피에 5만 팔로어… "비싼 기기 없어도 괜찮아요"
비싼 커피 머신은 없다. 화려한 공간도 없다. 헐렁한 잠옷이나 편한 옷 차림의 한 여성이 아무 말 없이 동영상으로 올리는 1분 이내의 홈카페 레시피. 인스타그램 ‘에이미 테이블’은 팔로어 수는 5만 명을 넘는다. 200여 개의 레시피 그 자체에만 집중한 그의 페이지를 찾는 사람들은 반응이 비슷하다. “나도 해보고 싶다”거나 “만드는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 출근길 힐링했다”는 것.

엄청난 도구 없이도 웬만한 카페보다 더 화려한 메뉴를 만들어내는 에이미는 '오늘은 집에서 카페처럼'의 저자 박현선 씨(30·사진)다. 박 씨의 직업은 푸드 마케터. 현재 ‘션커뮤니케이션’의 마케터로 일하며 식품회사의 신제품, 외식 업체의 신메뉴 등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일을 한다. 지난 5일 서울 논현동에서 만난 그는 “20대 초반부터 좋아하는 일을 쫓아 살았을 뿐인데, 어느 순간 직업이 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탄탄한 직장을 다닌 건 아니다. 그의 전공은 서양화. 예술고등학교를 나와 그림을 전공했지만 대학 시절 사진과 디자인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는 “친구와 카메라 하나 들고 카페를 찾아다니며 음식 사진을 찍고, 트렌디한 카페의 인테리어를 찾아다니는 걸 유일한 취미로 여겼다”며 “그 친구와 나중에 넌 베이커리를 하고, 난 카페를 하자는 약속도 하곤 했다”고 말했다.
잠옷 입고 올리는 홈카페 레시피에 5만 팔로어… "비싼 기기 없어도 괜찮아요"
첫 직장은 빈티지 소품 등을 수집해 재판매하는 회사였다. 웹디자인과 제품 사진 촬영 등의 업무를 맡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가 어려워졌다. 일은 즐거웠지만 월급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없었고, 행정적·법적 문제도 있었다. “힘들었어요. 고향인 포항을 떠나 부산으로 가서 열정을 갖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끝이 좋지 않았죠. 다 버리고 터덜터덜 포항으로 돌아와 마음을 다잡기로 했어요.”

그때 그를 찾아온 게 커피였다. 포항의 한적한 바닷가 앞 한 커피 전문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지인이 소개한 자리라 정말 잠깐 하려고 했는데, 점장으로 1년을 보냈어요.” 그는 “매일 아침 가게 문을 열고 커피향 맡으며 손님을 기다릴 때, 창밖으로 반짝반짝이는 바다를 보며 마음을 많이 치유한 것 같다”고 했다. 베이커리에 강점이 있던 그 카페에서 기본적인 음료 제조법과 베이킹 기초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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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보낸 1년이라는 시간은 그에게 ‘용기’라는 단어를 되돌려줬다. 서울로 거처를 옮겨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로 했다. ‘좋아하는 일을 다시 해보자는 마음’으로 매일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등에 집에서 만드는 카페 메뉴 레시피를 차곡차곡 올렸다. 자연스럽게 그의 커리어가 됐고, 푸드 마케터로의 삶도 시작됐다. 지난해에는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와 책으로 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책이 완성된 그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력서에 쓰기에 별 볼 일 없던 일들만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들이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구나 생각했어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전히 자기만의 홈카페 레시피를 개발하고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는 “1년 전에 2000명이던 팔로어가 순식간에 5만 명을 넘어서면서 토요일 아침이면 자연스럽게 눈이 번쩍 떠진다”고 했다. 소소한 레시피를 보며 서로 소통하고, 다독이는 팔로어들이 힘이라고. 비싸고 화려한 기기들이 필요한 때가 되지 않았나 궁금했다. “많이 고민했어요. 유혹도 많지요. 하지만 처음에 시작한 그대로, 엄청난 첨단 기기 없이도 누구보다 맛있고 화려한 ‘나를 위한 레시피’를 만들 수 있다는 걸 계속 보여주고 싶어요. 당분간은 커피 머신을 따로 살 생각이 없습니다.”

박 씨와 함께 대학 시절 카페 투어를 함께 하며 비슷한 미래를 꿈꾸던 친구는 최근 한남동에 베이커리 카페를 오픈했다. 박 씨도 푸드 마케터 겸 책을 낸 홈카페 전문가가 되었으니 둘 다 10년 만에 꿈을 이룬 셈이다. 그는 오는 17일 서울 이태원 맥심플랜트에서 열리는 ‘2018 청춘커피페스티벌-6월의 소확행’ 무대에서 홈카페 특별 레시피를 선보인다. 그는 “대단하지 않은 재료로 누구나 할 수 있고, 맛있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