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스런 거울 뒷면을 캔버스로… 시간의 흔적을 더듬어 채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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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형 회화' 개척한 이열 교수, 16일부터 노화랑서 개인전
추상화가 이열 홍익대 교수(63)는 한국적 추상미술의 정체성을 찾으려 좌충우돌했다. 그는 1970년대 앵포르멜(비정형)로 대변되는 추상표현주의가 주름잡던 기성 화단에 귀기울이며 차가운 추상화 장르에 불을 붙였다. 대학 졸업 후에도 줄곧 당대 미술의 전위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거울형 회화’라는 독특한 형식을 개척해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 교수가 국내외 화단에서 추상미술의 지평을 확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 까닭이다.
한국적 추상미술을 선도한 이 교수가 15~30일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개인전을 연다. 2014년부터 최근까지 작업한 30여 점의 ‘거울형 회화’를 선보이는 신작 발표 성격의 개인전이다.
지난 14일 전시장에서 만난 이 교수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내가 살아온 순간의 경험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라고 정의했다. “젊은 시절 국내 화단을 지배한 추상표현주의가 안겨준 일말의 허무감을 극복하려 새로운 방식을 찾았다”는 그는 거울형 회화라는 형식을 통해 추상화의 반전을 시도했다. 반사라는 기본 특성을 살려 작품에 사용하는 거울을 이번에는 진실한 모습을 반추하는 상징물로 받아들였다.
작가는 2014년 우연히 경기 동두천 미군기지 철수 현장을 찾아 쓰레기통에 버려진 거울을 발견하고 묘한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어린시절 경대 앞에서 화장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거울을 오브제로 쓸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15년에는 파리국제예술공동체(Cite)에 입주해 1년을 체류하면서 파리 벼룩시장과 골동품시장을 드나들며 고풍스러운 거울을 사 모았다. 거울 뒷면을 캔버스로 활용해 신작에 도전했고, 서울에 돌아와 작업을 본격화했다.
“거울 뒷면을 부식시키거나 도구로 긁어 행위를 기록합니다. 투명한 천으로 두세 겹을 붙이고 흑백 가족사진이나 초상화 등을 올려 시간의 흔적을 아우르고요. 빈티지 액자가 어울리면 끼웁니다.”
캔버스에 흐르고 번지고, 휙 훑고 지나간 거친 붓자국은 작가의 힘찬 몸놀림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 굵은 붓질 밑으로 빛바랜 사진이 비치면서 서정적 향수를 끌어낸다. 다양한 톤의 블랙과 화이트의 만남, 낮은 톤의 황색과 회색이 캔버스에서 붓의 힘찬 움직임을 따라 빚어내는 선들은 강한 울림을 남긴다.
작가는 “거울 표면의 부식과 얼룩을 이용하기도 하고 드로잉과 몸짓을 활용해 거울의 시간과 일체화(一體化)하는 작업을 추구한다”며 “그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드러내는 또 다른 생성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작품 제목은 ‘배꼽에 어루쇠를 붙이다’라는 옛 속담을 차용했다. ‘배꼽에 거울을 붙이고 다녀서 모든 것을 속까지 환히 비추어 본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거울은 비록 요술경은 아니더라도 세상을 보는 또 다른 표현의 창구”라며 “얼룩이나 부식을 이용한 방식이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고 미소지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한국적 추상미술을 선도한 이 교수가 15~30일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개인전을 연다. 2014년부터 최근까지 작업한 30여 점의 ‘거울형 회화’를 선보이는 신작 발표 성격의 개인전이다.
지난 14일 전시장에서 만난 이 교수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내가 살아온 순간의 경험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라고 정의했다. “젊은 시절 국내 화단을 지배한 추상표현주의가 안겨준 일말의 허무감을 극복하려 새로운 방식을 찾았다”는 그는 거울형 회화라는 형식을 통해 추상화의 반전을 시도했다. 반사라는 기본 특성을 살려 작품에 사용하는 거울을 이번에는 진실한 모습을 반추하는 상징물로 받아들였다.
작가는 2014년 우연히 경기 동두천 미군기지 철수 현장을 찾아 쓰레기통에 버려진 거울을 발견하고 묘한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어린시절 경대 앞에서 화장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거울을 오브제로 쓸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15년에는 파리국제예술공동체(Cite)에 입주해 1년을 체류하면서 파리 벼룩시장과 골동품시장을 드나들며 고풍스러운 거울을 사 모았다. 거울 뒷면을 캔버스로 활용해 신작에 도전했고, 서울에 돌아와 작업을 본격화했다.
“거울 뒷면을 부식시키거나 도구로 긁어 행위를 기록합니다. 투명한 천으로 두세 겹을 붙이고 흑백 가족사진이나 초상화 등을 올려 시간의 흔적을 아우르고요. 빈티지 액자가 어울리면 끼웁니다.”
캔버스에 흐르고 번지고, 휙 훑고 지나간 거친 붓자국은 작가의 힘찬 몸놀림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 굵은 붓질 밑으로 빛바랜 사진이 비치면서 서정적 향수를 끌어낸다. 다양한 톤의 블랙과 화이트의 만남, 낮은 톤의 황색과 회색이 캔버스에서 붓의 힘찬 움직임을 따라 빚어내는 선들은 강한 울림을 남긴다.
작가는 “거울 표면의 부식과 얼룩을 이용하기도 하고 드로잉과 몸짓을 활용해 거울의 시간과 일체화(一體化)하는 작업을 추구한다”며 “그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드러내는 또 다른 생성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작품 제목은 ‘배꼽에 어루쇠를 붙이다’라는 옛 속담을 차용했다. ‘배꼽에 거울을 붙이고 다녀서 모든 것을 속까지 환히 비추어 본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거울은 비록 요술경은 아니더라도 세상을 보는 또 다른 표현의 창구”라며 “얼룩이나 부식을 이용한 방식이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고 미소지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