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문화의 원형 혼종 문화의 힘
혁명과 예술은 새로움을 추구한다. 이 도시는 비온 후의 풍경도 일변했다. 태양빛 세례를 받아 달궈졌던 도시는 빗속의 낭만적 항구가 됐다. 오래된 것들을 숙성시켜 새로운 생활양식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탁월한 도시가 산티아고 데 쿠바다. 문화의 물리적 접촉으로 화학반응이 쉽게 일어나는 곳이다. 오랫동안 친미 보수정부였던 바티스타 정권에 반정부적 성향으로 혁명을 주도한 세력들이 배출됐다.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오리엔테 지방의 산이 인상적이다. 쿠바 동쪽 끝단에 위치해 인근 카리브해 국가들과의 문화 통로다. 잦은 접촉으로 쿠바 내에서 카리브해 문화의 중심축이 된다. 쿠바를 대표하는 문화현상인 혼종의 매력이 이곳에서는 더 강하게 발휘된다. 초창기 쿠바 문화의 원류는 모두 이 도시에서 비롯됐다. 쿠바의 술 럼주의 고향이자 쿠바 민속음악인 손의 탄생지다. 쿠바를 대표하는 키워드 혁명과 예술 그 두 가지의 산실이었다. 수도가 아바나로 이전하기 전 이 도시는 쿠바 문화의 원형이라 불리는 잡탕 혼종 문화의 힘을 키웠다.
1514년 6월28일 스페인 콘키스타도르(정복자를 뜻하는 스페인어)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설립한 도시다. 바라코아 이후 두 번째로 세운 새로운 식민지 수도다. 구리 채광 중심지이자 이스파니올라(지금의 아이티)에서 오는 노예들의 하선지로 주목받으며 성장했다. 거주 구역은 화재로 소실됐지만 곧 재건됐다. 16~17세기에는 해적에 의한 밀무역의 거점이었다. 1518년 이 도시에서 후안 데 그리할바와 에르난 코르테스가 멕시코 해안 탐험에 나섰다. 1538년에는 에르난도 데 소토가 플로리다를 향해 떠났다. 1528년에 최초의 대성당이 세워졌다. 1522년부터 1589년까지 산티아고 데 쿠바는 스페인 식민지 쿠바의 수도였다. 1553년에는 프랑스군이, 1662년에는 영국군이 도시를 장악했다. 어디를 가나 도시와 문명이 발전하는 곳에서는 성을 쌓고 전쟁을 벌였다.
카리브해의 중심 도시
1898년 이 땅에서 미국과 스페인 전쟁의 전화가 발생하고 산티아고 데 쿠바 해전이 일어났다. 전쟁은 끝났고 이는 쿠바 독립에 기여했다. 또 1953년에는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160명의 청년 병사가 쿠바혁명의 시발점이 되는 쿠바 육군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다. 멕시코 망명 후 그란마호를 타고 온 82명의 게릴라가 다시 향한 곳이 이곳의 지에라 마에스트라 산이다. 한때 산티아고 데 쿠바는 망간, 구리 등의 광물과 설탕, 담배의 선적이 행해지는 항구로 알려지면서 파나마 국제항로의 중계항이 됐다. 또 쿠바 종단 도로의 동쪽 기점이기도 하다. 시내에 오리엔테대학이 있다. 산타 이피게니아 묘지에는 이 도시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시인이자 혁명가 호세 마르티, 쿠바음악의 거장 콤파이 세군도, 럼의 아버지 에밀리오 바카르디가 그들이다. 쿠바의 지배자 피델 카스트로도 2016년부터 그가 존경하는 호세 마르티 옆에 잠들어 있다.
식민지풍 건축물 가득
쿠바 럼의 시작을 알리는 럼 박물관, 바르카디가 세운 시립 박물관은 돌로레스 광장을 걸어 마르테 광장까지 가까운 거리에 있다. 산티아고 데 쿠바의 거리는 가파르다. 높은 계단도 자주 눈에 띈다. 나무로 둘러싸인 공원을 지나고 항구가 조망되는 높은 발코니를 가진 식민지풍 건축물이다. 오밀조밀하다. 오르락내리락 걸어가면서 모든 게 섞여 혼종의 정체불명일 것 같은 이 도시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도시에 등불이 켜지고 가끔씩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걸어보면 이곳은 애수에 젖은 항구가 아니라 삶의 진한 향기가 풍겨 나오는 끈적끈적한 살사 리듬이 살아있는 거리다. 비 그친 저녁 카페에 앉아 휴식을 즐기는 쿠바노들은 낯선 동양의 여행자들에게 환영의 인사를 건네며 친밀감을 드러낸다. “치나?” “곤니치와.” 머리를 흔들면 “오 코레아”라고 말을 건다.
글=최치현 여행작가 maodeng@naver.com
사진=정윤주 여행작가 traveler_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