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죄도시 스틸컷. (자료 = 네이버 영화)
영화 범죄도시 스틸컷. (자료 = 네이버 영화)
#. 북적거리던 가리봉동 거리가 일순간 술렁입니다. 식당과 노래방 등 먹자골목 내 20여명의 조선족 조폭들이 지나갑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맨 가운데 남성은 버건디 가죽재킷을 입었습니다. 얼굴엔 비장함이 가득하네요.

최근 관람객 400만명을 돌파한 영화 범죄도시에 등장하는 한 장면입니다. 범죄 스릴러 영화 속 배우들의 필수 아이템인 가죽재킷이 빠지지 않습니다. 마석도(마동석)는 검정 가죽재킷으로 터프함을 보여줬고, 장첸(윤계상)도 버건디 가죽재킷으로 잔인함을 드러냈습니다.

가죽재킷은 영화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각광을 받는 아이템입니다. 남성들이 입으면 '터프함'을, 여성들은 '걸크러쉬'를 뽐낼 수 있는데요. 이렇게 어느 곳에서나 사랑받는 가죽재킷은 어디서부터 출발했을까요.

가죽재킷의 나이는 무려 8000년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기원전 6000년경 이집트 벽화에서 가죽재킷의 존재를 짐작해 볼 수 있는데요. 당시 귀족 계급에서는 가죽 장신구, 신발, 채찍 등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축 산업이 발달해 가죽을 구하기 쉬워진 덕분이었죠. 아마 재킷형태의 가죽을 멋스럽게 걸친 귀족도 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역사적인 자료가 남아있는 가죽재킷만 따져보겠습니다. 1914년 할리데이비슨은 모터사이클에 유용한 아이템을 소개하는 카탈로그를 선보였습니다. 겉에는 말가죽을 사용하고, 칼라와 소매 등은 니트로 마감해 만든 옷이었죠. 어깨 근육이 좀 있어야 재킷 좀 걸쳐볼 수 있었을 것 같네요.

이때의 가죽재킷은 실용적이지 못했습니다. 말가죽은 소가죽보다 늘어지는 정도(인장력)가 약해 평상시 입기엔 불편했고 지퍼 대신 단추가 달려있다는 점 때문이었죠.

가죽 재킷의 대표 주자인 라이더 재킷은 1920년대 탄생했습니다. 라이더 재킷은 오토바이와 뗄 수 없는 관계인데요. 최초의 라이더 재킷 역시 오토바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1928년 미국의 쇼트(Schott) 사는 할리 데이비슨의 요청으로 질긴 암소 가죽을 사용해 지퍼를 단 라이더 재킷 '퍼펙토'를 선보였습니다. 이 재킷은 할리데이비슨을 통해 5.5달러에 팔렸습니다.

1940년대 들어 라이더 재킷은 전투기 조종사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1차 대전에서 독일 조종사들이 즐겨 입던 것이 업계(?) 전반에 퍼졌죠.

전투기 조종사들의 라이더 재킷은 소가죽 대신 양가죽을 사용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양 가죽을 사용한 이유가 있는데요. 전투기의 조종석이 외부에 노출돼 있어 추위와 바람에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1950년대 미국에서 가죽재킷은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를 잡았는데요. 영화배우와 가수들의 공이 컸습니다.

말론 브랜도가 영화 '더 와일드 원(위험한질주, 1953)'에서 가죽재킷을 입고 반항적인 이미지를 드러냈죠. 당시 제품도 쇼트사에서 만든 제품이었습니다. 학생들이 가죽재킷을 입고 다니자 미국의 많은 학교는 착용을 금지하고 불에 태우기까지 했다는데요.

일반 시민들에게 가죽재킷이 보편화되는 시기는 10여 년이 더 지나서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피혁원료의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PVC 등을 이용한 인조가죽이 상용화 된 다음이죠.

1964년 미국 뒤퐁사에서 구두가죽을 대체하는 코르팜을, 일본에서도 클라리노(Clanino) 등 다양한 스웨이드 타입의 피혁을 개발하면서 본격적으로 인조가죽이 패션소재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는 가죽재킷의 전성기입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1971년 런던 킹스로드에 '렛잇록(Let it Rock)'이라는 가게를 내 록과 펑크 음악 영향을 받은 '펑크 룩'을 유행시켰고 영국 밴드 섹스피스톨즈가 '가죽재킷=반항아'라는 이미지를 굳힙니다.
LF의 질스튜어트뉴욕 가을겨울(F/W) 화보. (자료 = LF)
LF의 질스튜어트뉴욕 가을겨울(F/W) 화보. (자료 = LF)
어느덧 가을도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가죽재킷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면 내년 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런, 그러다가 목이 빠질 수 있겠네요.

일교차가 큰 최근 날씨에도 가죽재킷은 활용하기 좋은 아이템입니다. 낮엔 가죽재킷을 어깨에 살짝 걸치고, 저녁엔 따뜻하게 입는 스타일링을 추천합니다.

올해 가을겨울(F/W) 시즌엔 버건디나 카키 등 다채로운 가죽재킷이 유행이라는 게 패션업계 설명입니다. 세련된 가을남자, 가을여자로 매력을 뽐내보는 건 어떨까요.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