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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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강릉 방향으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이천 나들목에 다다르면 높이 77m, 축구장 7.5배 면적(5만3000㎡)의 거대한 구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SK하이닉스가 2015년 8월 완공한 최첨단 반도체공장 ‘M14’다.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이 1984년 현대전자(SK하이닉스의 전신)에 입사한 뒤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 중 하나는 M14 공장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고 했다. 회사의 미래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가는 젊은 직원들이다.

“내가 현장에 있을 때보다 훨씬 일을 잘해요. 그들을 보고 있으면 절로 뿌듯해집니다.”

M14는 SK하이닉스가 1983년 출범 후 지은 14번째 반도체 공장(manufacturing)을 의미한다. M14가 완공되면서 SK하이닉스는 비로소 D램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박 부회장이 2013년 초 최고경영자(CEO)를 맡은 뒤 결정한 첫 대규모 투자(15조원)였다.

공교롭게도 SK하이닉스의 첫 반도체 공장인 ‘M1’은 박 부회장이 현대전자 입사 첫해인 1984년 이천에 지어졌다. “당시 허허벌판에 반도체 공장 하나 달랑 있던 곳이 지금은 SK하이닉스와 협력사 임직원 2만여 명이 거주하는 대규모 복합단지로 변모했습니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말 그대로 상전벽해죠.”

M14는 SK그룹에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2012년 하이닉스를 인수한 뒤 첫 투자였기 때문이다. 반도체 기업은 호황기에 벌어들인 이익을 설비 확충과 연구개발에 과감하게 투자해야 불황기를 견뎌낼 수 있다. “최근 실적 호조는 최태원 회장의 과감한 투자 결정이 한몫했습니다. 당시 상황으로 보면 충분히 보수적으로 판단했을 수도 있는데, 현장 엔지니어의 의견을 잘 들어줬죠.” 반도체 경기 불황으로 대부분 반도체 기업이 투자를 줄인 2012년 SK하이닉스는 오히려 10% 늘렸다.

올해 SK하이닉스의 예상 영업이익(증권가 컨센서스)은 13조2960억원으로 SK그룹으로 인수되기 직전인 2011년 3691억원의 36배 규모다. 같은 기간 매출은 10조3985억원에서 29조925억원으로 세 배가량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박 부회장은 내년 반도체 업황을 “올해와 같은 공급 부족 현상은 완화되겠지만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데이터센터발(發) 수요가 시장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loT),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이 반도체업계에 새로운 성장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부회장은 지금 이 순간 안도감보다 오히려 위기감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등장인물이 사람 머리 속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꿈과 현실,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는 영화 ‘인셉션’을 예로 들었다. “영화에서 3차원 공간이 갑자기 확확 바뀌는 것처럼 현실에서도 회사를 둘러싼 기술과 환경이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지금 호황을 보면 연간 수조원씩 적자를 내던 불황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지만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늘 불안한 것이 반도체회사의 숙명인 것 같습니다.”

SK하이닉스 조직에 대해서도 다소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박 부회장은 “여러 차례 위기를 극복하면서 쌓은 경험과 사명감, 공동체 의식이 SK하이닉스만의 장점”이라며 “하지만 이런 장점이 나중에 약점이 될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위기를 극복하면서 단기 문제 해결 능력은 키웠지만 미래를 준비하고 만들어 나가는 전략적 역량은 달리는 것 아니냐는 진단이다.

박 부회장은 기술과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CEO에게 요구하는 역할도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취임 초기엔 현장과 조직의 잠재적 리스크를 찾아 사전에 예방하려 했다면 최근 들어서는 임직원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사업의 우선 순위를 선별하는 데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특히 조직 내부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 제조업 저변에 깔려 있는 군대문화가 임직원의 원활한 소통을 가로막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너무 경험을 앞세우거나 말을 많이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뜻대로 잘 안 되고 있지만요….”

■ 박성욱 부회장은…

현대전자 엔지니어 출신 CEO…매뉴얼 통째로 외울정도로 '꼼꼼'
대표 맡은 후 3년 연속 최대 실적…국내 첫 '임금공유제' 도입 성과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은 현대전자(SK하이닉스 전신) 엔지니어 출신 최고경영자(CEO)다.

경북 포항 출신인 그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상고(동지상고)를 택했다. 졸업 후 곧바로 은행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부기와 주산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는 대학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바꿔 울산대 재료공학과에 들어갔다. 1984년 KAIST 재료공학 석사학위를 딴 뒤 현대전자에 입사했다.

그는 입사 초기 철저한 업무 처리로 인정받았다. 신입사원 시절 반도체 공정을 제대로 알기 위해 런 시트(run sheet)라 불리는 작업 매뉴얼 수십 개를 통째로 외울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주요 연구개발(R&D) 과제를 깔끔하게 수행하면서 중책을 맡기 시작했다. 회사 지원으로 KAIST 박사 과정도 밟았다. 사내 첫 사례였다. 박 부회장은 “꼼꼼한 성격이 수많은 작은 공정의 작은 실수 하나도 용납하지 않는 반도체업과 잘 맞았다”고 설명했다.

2003~2012년 10년간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R&D를 총괄했다. 직급은 상무에서 부사장으로 올라갔다. 이 기간 SK하이닉스는 D램 분야에서 해마다 새로운 공정을 내놨다. ‘120나노’급 미세공정을 ‘20나노(2x)’급으로 열 단계 이상 발전시켰다. 수십 곳에 달하는 D램 업체가 두 차례에 걸친 ‘치킨게임’으로 극심한 구조조정을 겪던 시기였다. 당시 채권단 관리 아래 제대로 된 투자를 하기가 어려운 악조건에서도 이룬 성과여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07년 경쟁사 D램 반도체 수율이 SK하이닉스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자 경쟁사가 경영진에 문책성 인사를 단행한 것이 사내에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2013년 연구개발총괄 부사장에서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SK그룹에 인수된 지 약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성과에 따른 발탁 인사였다. 이후 회사는 3년 연속(2013~2015년) 사상 최대 이익을 거뒀다. 2015년 노조와 함께 국내 최초로 임금공유제를 도입한 것도 박 부회장이 이룬 대표적 성과 중 하나다. 노조원 임금 인상분의 20%를 협력사에 지원하는 이 제도는 이후 다른 대기업으로 확산됐다. 지난해 3월부터는 한국반도체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 박성욱 부회장 프로필

△1958년 경북 포항 출생 △1982년 울산대 재료공학과 졸업 △1984·1992년 KAIST 재료공학 석·박사 △1984년 현대전자(SK하이닉스 전신) 반도체연구소 입사 △2001년 현대전자 미국 생산법인 이사 △2003년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 메모리연구소장 △2007년 하이닉스반도체 부사장 △2012년 SK하이닉스 부사장(연구개발 총괄) △2013년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 △2017년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