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폼페이 포도가 좋은 이유
고대 로마 시인 마르티알리스는 “포도주의 신 바쿠스가 고향인 올림포스보다 베수비오를 더 사모했다”고 적었다. 베수비오는 이탈리아 남서부 폼페이 부근에 있는 화산. 수천 년 전부터 포도 재배지로 유명했다. 화산암류 토양이 야생 포도 산지로 적합했기 때문이다. 이곳 포도로 양조한 와인은 폼페이의 최대 수출품이자 소득원이었다. 와인을 담았던 폼페이 항아리 ‘암포라’가 프랑스 스페인 독일 영국 아프리카에서 발견될 정도였다.

폼페이 사람들도 바쿠스를 숭배했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대폭발로 도시 전체가 파묻히기 전까지 곳곳을 바쿠스 조각과 그림으로 장식했다. 인구 2만여 명 도시에 와인바만 200개 이상이었다고 한다. 6~7m 두께의 화산재 아래 갇혀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드러난 유적엔 대규모 양조장 자리와 포도밭, 커다란 항아리, 술집 흔적도 그대로 남아 있다.

얼마 전엔 폼페이 유적지에 과거 포도밭이 재현됐다. 유적보호국 응용연구소는 옛 프레스코화의 두 아기 천사가 들고 있는 포도 품종을 밝혀낸 뒤 고문서를 뒤져 폼페이 와인을 되살렸다. 포도나무 뿌리 흔적이 흙 속에 남아 있어 그 옛날 어디에 포도 농장이 있었고 어떤 포도를 키웠는지를 알 수 있었다.

폼페이 와인의 비결은 테루아(토양)였다. 폼페이의 토양에는 화산암 부스러기로 구성된 흙이 30㎝ 두께로 덮여 있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뿜어내는 화산재 속에는 칼륨, 나트륨, 인 같은 물질이 들어 영양이 풍부하다. 수세미처럼 수없이 많은 화산재의 구멍으로 공기와 물을 쉽게 품을 수 있어 통기성도 뛰어나다. 유용한 박테리아가 서식하는 데에도 유리하다.

폼페이 남쪽의 시칠리아 섬 토양도 이와 비슷하다. 현존 화산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에트나 화산이 200번 넘게 폭발해 특별한 토양을 갖게 됐다. 여기에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까지 더해져 폼페이와 함께 이탈리아 최고 와인 원산지가 됐다. 요즘은 북부 토스카나와 피에몬테 지역이 더 많이 알려졌지만, 여전히 이탈리아 전통 와인의 풍미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쪽을 찾는다.

어제(8월24일)는 1938년 전 베수비오 화산 대폭발로 폼페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날. 지난달에는 베수비오 산에서 짙은 연기가 퍼져 화산 공포가 번졌지만 다행히 폭염 속 산불이 원인으로 밝혀져 안도했다. 며칠 전엔 폼페이 앞바다 이스키아섬의 지진으로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 와중에 열한 살 형이 두 동생을 침대 밑에 밀어넣고 빗자루 손잡이를 두들겨 위치를 알린 덕분에 16시간 만에 구조되기도 했다. 화산 토양의 통기성이 이들을 살린 셈이니 폼페이를 집어삼킨 화산재가 때론 ‘생명의 기적’을 낳기도 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