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을 계기로 ‘혈맹’으로 맺어졌던 북한과 중국 관계가 파열음을 내고 있다. 관영 언론을 내세운 대리전 형태를 띠고 있긴 하지만 양국 모두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원색적인 비방을 쏟아내고 있다.

북한은 중국을 향해 ‘배신자’라며 맹비난했고, 중국은 ‘북·중 우호조약 파기’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도발을 놓고 미국과 북한 간 긴장이 높아지다가 북·중 간 대립으로 양상이 바뀌었다.
◆북·중 혈맹관계 균열 조짐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월 중국이 북한산 석탄 수입 중단 조치를 발표하자 “대국이라고 자처하는 나라가 줏대도 없이 미국의 장단에 춤춘다”고 비난했다. 지난달 중국 관영 언론들이 대북 석유공급 중단 가능성을 시사하자 “중국이 경제제재에 매달린다면 우리와의 관계에 미칠 파국적 후과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지난 3일 조선중앙통신은 훨씬 더 강도가 센 논평을 냈다. ‘이웃 나라’ ‘주변국’과 같은 우회적인 표현 대신 ‘중국’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북한이 과거부터 품어온 불만을 조목조목 늘어놨다.

우선 25년 전 이뤄진 한국과 중국 간 수교를 걸고넘어졌다. “(중국은 한국과) 정치·군사적으로 관계를 심화시켜 중국 전역을 반(反)공화국의 전초기지로 전락시켰다”고 날을 세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9월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 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톈안먼광장 망루에 오른 것에 대해서도 “(한국과) 세상 보란듯이 입 맞추며 온갖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고 맹비난했다. 또 “조·중(朝·中) 관계의 ‘레드 라인’(금지선)을 우리가 넘어선 것이 아니라 중국이 난폭하게 짓밟으며 서슴없이 넘어서고 있다”고 공격했다.

중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 도발을 이어가고, 6차 핵실험 조짐을 보이자 강경한 대북 경고를 날렸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가 주도했다. 중국 정부가 금기시해온 대북 석유공급 중단 카드를 노골적으로 거론한 것은 물론 미국의 북한 핵시설 선제타격을 용인할 수 있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달 28일엔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더 이상 혈맹관계가 아니다”고 규정했다.

둥즈위 화동정법대 교수도 지난 2일 파이낸셜타임스 중문판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중·조(中·朝) 우호조약을 끝내는 것이 중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중 간 최근 논쟁을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시진핑-김정은 불신 폭발

북·중 간 최근 갈등은 ‘시진핑-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축적된 불만과 불신이 북핵 문제를 계기로 폭발하면서 불거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당초 2011년 12월 김정은 정권 출범을 북·중 관계 개선의 기회로 활용하려 했다. 김정은이 “총알과 쌀이 동등하게 중요하다”며 개혁·개방 의지를 밝혔기 때문이다.

그런 북한이 시진핑 정부 출범 직전인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단행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특히 2016년 1월 북한이 중국 측에 사전통보 없이 4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북한이 시진핑 주석의 뺨을 때렸다”고 표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환율조작국 지정, 보복관세 부과 등을 앞세우며 시 주석에게 북핵 문제 해결을 강하게 압박한 전략 역시 북·중 간 갈등을 키우는 쐐기로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그는 지난달 초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 직후 중국이 북핵 해결에 나선다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겠다고 당근을 제시했다.

베이징 외교가에선 북한의 비난전을 두고 “중국이 북한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석유공급 축소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높아지자 마음이 다급해져 중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교수는 “중국의 유례없는 압박이 대북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미·중 관계 안정을 위한 전술적 차원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