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꾼 A씨는 지난해 8월 2일 유명 인터넷 위키(wiki) 사이트인 나무위키에 ‘성평등주의’를 이 같이 정의했다. 나무위키는 이용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백과사전이다.
A씨의 정의 이후 성평등주의(이퀄리즘)은 극단적인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근거로 널리 사용됐다. 온라인 상에서 “여성을 도와주지 마라” “여성을 위해 비용을 지불하지 마라” 등의 내용인 ‘성평등주의 10계명’이 호응을 얻기도 했다. 정의당의 한 소모임은 작년 9월 3일 ‘정의당은 성평등주의 정당이니 남성을 역차별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서울 시내 30여곳에 내걸기도 했다.
일부 누리꾼들이 성평등주의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용어라고 지적했지만 소용 없었다. 성평등주의라는 개념은 오히려 확대 재생산됐다. 페미니즘·페미니스트·남성우월주의 등 여성 관련 문서 십수 곳에서는 “성평등주의에 비하면 페미니즘은 편파적인 사상이다” “서구권 페미니스트들은 성평등주의자로 전향하고 있다” 등의 내용이 추가됐다.
하지만 성평등주의는 한 위키 이용자가 만들어낸 가상의 사상이란 게 반년만에 밝혀졌다. 지난달 26일 페미니즘 관련 위키인 '페미위키'의 한 누리꾼에 의해서다.1일 구글의 논문 검색 기능인 ‘구글 스콜라’ 검색 결과에 의하면 성 평등주의를 의미하는 ‘gender equalism’ 검색 결과는 4건에 불과하다. ‘feminism’ 검색 결과가 81만 4천여건이 나오는 것과 대비된다. 평소 페미니즘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A씨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다른 이용자들과 모의해 가상의 이론을 만들어 퍼뜨린 정황도 포착됐다. 나무위키의 해당 문서는 현재 삭제된 상태다.
이번 사건은 소수의 이용자가 이론을 날조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백과사전형 위키 사이트에는 ‘내용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면책 조항이 있지만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위키를 백과사전처럼 공신력 있는 매체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모씨는 트위터에 “악의적인 일부 이용자가 꾸준히 인터넷에 암약하며 차별이 담긴 이론을 생산하고 유통시켰다”고 했다. 하모씨는 “누군가 공을 들여 더욱 그럴듯한 사상을 만들었다면 아직까지 발각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백과사전 형식으로 서술된 정보는 근거가 없더라도 이용자들이 사실이라고 믿기 쉽다”며 “지식 공유형 위키에 있는 정보를 이용하기 전에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있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