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에 강한 신문 한경 JOB] 고려대생들의 취업 '솔직 토크'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고대 졸업장이 취업보장 못해" 실감…친구들 재수·삼수 다반사
영어·인도네시아어 둘다 자신 있는데 올 가을 세번째 취업 도전
인문계생은 이공계와도 경쟁해야하는 처지
9급 공무원 준비하는 친구 때로는 부럽기도
영어·인도네시아어 둘다 자신 있는데 올 가을 세번째 취업 도전
인문계생은 이공계와도 경쟁해야하는 처지
9급 공무원 준비하는 친구 때로는 부럽기도

지난 5일 고려대에서 만난 홍인욱 씨(27·경제학과 4년)는 풀 죽은 표정이었다. 그는 “19년간 인도네시아에서 살아 영어와 인도네시아어 모두 자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취업은 좁은 문이었다. 그는 “이번 (가을) 공채가 세 번째 입사 도전”이라고 했다. 나성영 씨(26·행정학과 4년)는 “서류전형 합격률이 높은 이공계 친구들이 부러울 따름”이라고 했다.
ADVERTISEMENT
취업 위해 ‘재수, 삼수’ 밥 먹듯
![[취업에 강한 신문 한경 JOB] 고려대생들의 취업 '솔직 토크'](https://img.hankyung.com/photo/201610/AA.12663819.1.jpg)
ADVERTISEMENT
익명을 요구한 김모씨(28·영문학과 4년)는 “36곳에 지원해 6곳의 서류전형에 합격했다”며 “이 정도면 친구들 사이에서 (너무 많이 합격했다는 의미에서) ‘역적’으로 꼽힐 정도”라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해 하반기 공채에 지원했다가 취업시장이 만만찮다는 것을 깨닫고 휴학을 했다. 1년간 준비를 거쳐 이번 학기에 복학했다. 그는 “‘자소서 복붙’(자기소개서 복사해 붙여넣기)은 절대 안 하는 게 원칙”이라며 “서류 합격률이 높은 이유도 자기소개서를 일일이 쓴 덕분인 것 같다”고 했다.
취업 대신 다른 진로를 고민하기도 한다.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정용수 씨(25)는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지만 올가을 대졸 신입사원 공채에 한 군데도 지원하지 않았다. 정씨는 “먼저 입사한 선배들이 ‘월화수목금금금’ 밥 먹듯이 야근하다 결국 퇴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취업과 진로에 대해 좀 더 고민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이들이 취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다. 이씨는 “국민은행 자소서를 쓸 땐 은행원이 됐다가 현대차 자소서를 쓸 때는 제조업 영업맨이 되면서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나씨는 “같은 회사 같은 직무인데도 정량적 스펙이 부족한 사람이 합격하고 정성껏 서류를 작성한 사람이 불합격하는 것을 보면서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고 했다. 특히 서류 전형 합격자가 발표될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고 했다. 이씨는 “고시공부를 할 때는 ‘한 개 회사만 합격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후배를 위로했는데 막상 내가 ‘탈탈탈’ 털리고 나니 그게 미안한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탈락 경험을 통해 사람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다”고 했다.
ADVERTISEMENT
나씨도 “모 기업 인·적성 시험을 보러 갈 때 아는 형이 ‘왜 거기를 가느냐’고 하더라. 어른들은 모른다. 고려대 나오면 다 쉽게 취업하고 고시 보면 다 되는 줄 안다. 정말 눈물을 흘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김씨는 “어떤 대학은 재학생의 취업을 위해 학교가 발벗고 나서지만 명문대는 학생들이 잘 할 거라 믿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 때문에 취업에선 오히려 불리하다”고 했다. 정씨는 “일찌감치 9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이 부럽기도 하다”고 했다.
이들은 자신이 밤 새워 작성한 자소서를 기업들이 정말 꼼꼼히 읽는지 의문이라고도 했다. 나씨는 “한 홈쇼핑 업체에 지원한 친구가 자소서에 다른 회사 이름을 써넣었는데도 합격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씨는 “어떤 회사는 지난달 22일 지원서를 마감한 뒤 1주일 만에 서류전형 합격자를 발표했다”며 “스펙으로만 재단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했다.
이들은 기업이 채용하려는 직무에 필요한 핵심 역량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야 취업준비생이 불필요하게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기업에 원서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청년 일자리를 늘렸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국헌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학벌시대는 지났다”며 “묻지마 지원보다 구직자들이 자신의 강점을 바탕으로 회사에 지원해야 개인도 행복하고 기업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