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아일랜드 부활절 봉기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의 오코넬 거리에 있는 중앙우체국. 외국 관광객과 더블린 시민들의 약속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100년 전 부활절 주간에 봉기한 시민들이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며 싸운 곳이기도 하다. 석조 기둥 곳곳에 총탄 흔적이 선명하다. 피의 역사를 보여주는 비극의 현장이다.

1916년 4월24일, 아일랜드인 2000여명이 이곳을 총사령부로 삼고 무장투쟁을 벌였다. 이들은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며 ‘피의 희생을 통한 민족적 부활’을 부르짖었으나 1주일 만에 진압되고 말았다. 500여명이 죽었고 2500여명이 부상했다. 지도부 14명은 처형됐다.

하지만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봉기에 참여하지 않았던 시민들이 영국군의 무차별 사격에 희생자가 잇따르자 분노해 일어섰다. 이후 독립에 대한 염원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실패한 듯한 ‘부활절 봉기’는 마침내 1922년 독립국가로 거듭나는 원동력이 됐다.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예이츠가 ‘1916년 부활절’이라는 시에서 ‘너무도 오랜 희생은 가슴 속에 돌을 박는다’고 했다. 그는 핍박받는 사람들의 돌덩이 같은 슬픔이 봉기로 분출되는 것을 보고 ‘모든 것이 변했어, 완전히 변했어./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이 탄생했어’라고 노래했다.

켈트족인 아일랜드 사람들은 800여년간 앵글로 색슨의 지배 아래 고통을 겪었다. 1845년부터 6년 이상 계속된 ‘감자 기근’으로 800만 인구 중 200만명 이상이 죽거나 이민선을 타야 했다. 그러나 황량한 들판에도 봄은 오고 희망의 싹은 돋는다. 미국 대통령 43명 중 22명이 아일랜드 혈통이다. 시인 예이츠와 셰이머스 히니를 비롯해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 조지 버나드 쇼 등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4명이나 된다.

지난 주말 더블린에서 부활절 봉기 100주년 기념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다. 영국 정부는 “부활절 봉기 100주년을 화해증진 방식으로 기념토록 한 아일랜드 정부의 노력을 환영하고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그 배경에는 경제적 협력의 지렛대가 있다. 지난해 아일랜드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7%로 2014년(5.2%)에 이어 2년 연속 유럽 최고를 기록했다.

한때 아일랜드를 괴롭히던 속박과 기근의 풍경 속으로 이제는 새로운 들판과 바람, 파도 소리가 펼쳐진다. 세계 각국 여행자들은 그 바닷가 절벽으로 난 길을 흑백사진 속의 주인공처럼 걸어보고 싶어한다. 아일랜드의 어제와 오늘이 겹치는 그 경계의 접점에서는 어떤 꽃이 새로 필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