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준어로는 곰장어(학명 먹장어)이지만 ‘꼼장어’라고 해야 제맛이 나는 이 바닷고기는 가난한 시대의 산물이다. 광복과 6·25 와중에 배고픔을 달래려고 먹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식용이 아니었다는데, 매콤한 고추장과 연탄화덕의 불맛이 이 신종 메뉴에 향미를 더했다. 피란통의 궁핍과 아픔을 견딘 자갈치 아지매들의 삶이 거기에 녹아 있다. ‘수박등 흐려진 선창가 전봇대’와 ‘사십 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마음까지 다독이던 눈물의 안주이자 끼니였다.
비슷한 생김새 때문에 ‘아나고’와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소한 회맛으로 유명한 ‘아나고’는 부산 인근에서 잡히는 붕장어의 일본 이름이다. 요즘은 횟감이 다양해져서 인기가 옛날 같지는 않지만 막장이나 초장에 쌈을 싸먹는 ‘아나고’의 진미는 여전히 부산의 자랑이다. 상추, 깻잎, 풋고추, 생마늘과 함께 먹는 그 맛을 잊지 못해 서울의 횟집 골목을 전전하는 중년들이 많다.
피란민 덕분에 더 유명해진 돼지국밥도 별미다. 돼지고기와 순대, 내장을 듬뿍 넣은 뚝배기 국에 밥을 말고 새우젓과 부추무침을 곁들여 한 그릇 하고 나면 부러울 게 없었다. 복국이나 시래기국 같은 부산 특유의 해장국도 이곳 사내들의 호쾌한 기질과 맞는 음식이다. 국제시장 사거리를 중심으로 부평동 깡통시장의 어묵과 족발 향기는 또 어떤가.
부산의 전통과 역사가 잘 드러난 음식 중 동래파전과 금정산성막걸리를 빼놓을 수 없다. 동래파전은 다른 지역과 달리 해산물을 풍부하게 넣고 간장 대신 초고추장과 함께 먹는다. 단백질과 철분 함량이 높고 양도 푸짐해서 막걸리 안주로 최고다. 500년 전통의 산성막걸리는 쌀과 누룩을 7 대 4 비율로 섞어 빚는다. 그래서 숙성미가 뛰어나고 맛도 좋다.
부산 음식의 특성을 한마디로 말할 순 없다. 역사와 환경, 지리와 사람의 기질이 한데 버무려진 종합해물탕 맛이랄까. 전쟁 중에 팔도 사람을 다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새로운 풍미를 찾아낸 항구 도시의 개방성도 부산만의 특징일 것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