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는 도심 가로화단의 꽃이 몇 종류 안 됐지만 요즘은 아주 다양해졌다. 주요 대로마다 계절을 대표하는 꽃들이 잇달아 등장한다. 서울 강남대로만 해도 4월엔 개나리·진달래, 5월 금어초, 6월 백합, 7월 아스틸베, 8월 칸나, 9월 글라디올러스, 10월 국화 등이 연중 옷을 갈아입는다. 한천로 등 강북 지역과 지방 도시도 마찬가지다.
이런 꽃단장은 누가 어떻게 할까. 대부분은 시, 구, 동 같은 지방 행정조직이 조경·수목단체 등과 협의해 수종을 선정하고 관리한다. 해당 지역 기업의 후원을 받아 공동으로 관리하기도 한다. 이들의 ‘화단 가꾸기’ 프로젝트를 보면 꽃에도 유행이 있는 것 같다. 묘목이 자라는 기간을 감안하면 몇 년 전부터 수종을 정해야 하니 일종의 ‘선행 패션’인데, 의류업체들이 유행색이나 디자인을 미리 띄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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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에 민감한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집에서 키우는 꽃도 트렌드를 탄다. 한때는 산세베리아가 인기였다. 공기정화 기능이 뛰어난 데다 물을 자주 안 줘도 된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시들해졌다. 미국 항공우주국의 우주선 내 공기정화 능력 실험에서 거의 꼴찌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후 아레카 야자가 실내 오염물질 제거 및 습도조절 능력 최고라는 평가를 업고 1위로 등극했다.
그 뒤로는 대나무야자, 인도고무나무, 관음죽, 팔손이나무, 필로덴드론, 파키라 등이 유행을 탔다. 로즈마리(허브)도 음이온 방출 효과 덕분에 대세를 이뤘다. 얼마 전부터는 선인장처럼 잎이나 줄기에 수분이 많은 다육식물(多肉植物)이 유행이다. 스투키, 테이블야자 등 이른바 ‘다육이 패밀리’가 인기 품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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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는 해도 인위적인 유행 꽃이 자연에서 피는 제철 꽃보다 아름다울 리는 없다. 북송 시인 왕기(王淇)도 ‘늦봄에(暮春游小園)’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매화 시들고 나니/ 해당화 새빨갛게 물이 들었네/ 들장미 피고 나면 꽃 다 피는가 하였더니/ 찔레꽃 가닥가닥 담장을 넘어오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