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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oks In Life] 민족·평등·국가에 매몰되면 개인자유 파괴…자유주의 사상가 12명을 만나 인생철학 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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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잃은 내가 만난 운명의 Book
    (50·끝) 자유주의 사상가 12인의 위대한 생각
    월간조선에 ‘자유주의 사상가 열전’이 연재되던 2002~2003년은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고 자칭 진보세력이 한참 기세를 올릴 무렵이었다. 노무현 정부 인사 중에는 “진보세력이 앞으로 20년은 집권할 것”이라고 호언하는 사람도 있었다. 보수우파세력은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런 때에 ‘자유주의 사상가 열전’은 독자들에게 사회주의세력, 좌파세력은 인간성의 본질과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반동(反動)세력이며, 자유주의 사상은 당장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결국은 승리할 것이라는 신념을 심어주었다.
    [Books In Life] 민족·평등·국가에 매몰되면 개인자유 파괴…자유주의 사상가 12명을 만나 인생철학 변해
    라인강의 기적을 일군 에르하르트

    개인적으로 특히 인상 깊게 읽었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서독) 경제장관을 지내면서 ‘라인강의 기적’을 일군 루트비히 에르하르트의 얘기였다. 당시 독일에서는 좌파는 물론 우파인사들 사이에서도 ‘계획경제’와 ‘시장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었다. 하지만 오이켄과 뢰프케의 ‘질서자유주의’의 세례를 받은 에르하르트는 계획경제를 거부하고 서독 경제가 나아가야 할 길로 자유시장경제를 선택했다. 이후 서독은 전례 없는 자유와 번영을 구가했고, 결국 이를 바탕으로 통일까지 이루어냈다.

    역사를 보면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 애를 써도 역사의 흐름을 막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느 한 특별한 인물 때문에 역사의 물굽이가 확 바뀌는 경우도 있다. 에르하르트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Books In Life] 민족·평등·국가에 매몰되면 개인자유 파괴…자유주의 사상가 12명을 만나 인생철학 변해
    ‘자유주의 사상가 열전’ 연재가 월간조선에서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 무렵 전국경제인연합회로 옮겨가 있던 박종찬 전 자유기업원 NGO 실장으로부터 전경련에서 주는 ‘시장경제출판대상’이라는 것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유주의 사상가 열전’이야말로 그 상의 취지에 가장 부합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서둘러서 ‘자유주의 사상가 열전’을 책으로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가제(假題)는 ‘자유주의 사상가 12인의 위대한 생애’로 정했다. 이 제목을 본 조갑제 대표가 의견을 제시했다.“‘자유주의 사상가 12인의 위대한 생애?’ 이분들의 경우 그 ‘생애’가 위대했다기보다는 ‘생각’이 위대했던 것 아닌가? ‘자유주의 사상가 12인의 위대한 생각’이 어떻겠나?”

    《자유주의 사상가 12인의 위대한 생각》이라는 책 제목은 그렇게 결정됐다. 이 책은 2004년 시장경제출판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2004년 말부터 자유주의를 내건 뉴라이트운동이 시작됐다. 과거 1970~80년대 좌파운동을 하다가 생각을 바꾼 이들이 주축이 된 이 운동은 당시 지식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월간조선》에서도 뉴라이트의 활동을 열심히 보도했다. 자유주의연대,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뉴라이트단체를 방문해 보면 책장에 《자유주의 사상가 12인의 위대한 생각》이 꽂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뉴라이트 운동가들은 이 책이 자기들이 자유주의를 공부하거나 대학생들을 교육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자유주의자가 돼 가다

    ‘자유주의 사상가 열전’을 기획하고, 이 연재물을 다시 책으로 엮어냈지만, 이 책은 나를 바꾸어 놓은 책이기도 하다. 나이로 보면 나는 이른바 386세대에 속한다. 지인(知人)들로부터 ‘태어날 때부터 보수주의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나는 원래부터 확고한 우파 보수주의자였다. 그 시끄럽던 1980년대 중·후반에 대학을 다니면서도 좌파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자유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국가주의자였고,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가치에 무게를 두는 입장이었다. 민족주의와 집단주의적 정서는 아마 유신 말기에 초·중등교육을 받은 386세대 공통의 정서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만 보면 나도 주사파(主思派)가 될 소지가 다분히 있었던 셈이다. 다행히도 1946년에 조부모님이 일찌감치 38선을 넘었던 집안 내력과 역사책을 많이 읽었던 덕분에 좌파 쪽으로 실족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역사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막연하게나마 역사란 온갖 우연과 인간의 다양한 경험이 축적되어 만들어지는 것이지, 몇몇 천재들이 인위적으로 구상해 낸 화려한 청사진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대학 시절 읽은 책 중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책은 로버트 컨퀘스트의 《혁명과 권력(Great Terror)》이었다. 스탈린의 대숙청을 다룬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좌파세력이 정권을 잡는다고 해서 그들이 목청껏 외쳐대는 ‘사람 사는 세상’ ‘해방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마르크스주의가 제시하는 청사진을 실천하려 했던 자들이 만든 세상은 인간이 인간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추악한 지옥이었다.

    모든 것이 같아야 한다는 마르크스

    배진영 월간조선 차장
    배진영 월간조선 차장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나름의 개성을 가진 존재들이다. 그 사람들을 마르크스주의라는 하나의 틀 안에 집어넣어 똑같은 모양으로 주조할 수 있을까? 말로는 교육과 교화를 통해 ‘공산주의적 새 인간형’을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끝내 그렇게 되기를 거부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때는 교육과 교화를 빙자한 폭력이 동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끝내 그걸 거부하는 사람은 파괴되어야 할 것이다.

    좌파운동권이 만들어낼 세상은 《혁명과 권력》 속의 지옥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대학 시절부터 운동권의 논리를 거부했다. ‘자유주의 사상가 열전’을 통해 하이에크, 미제스, 포퍼 등을 만나면서 나는 막연하게 생각해오던 문제들을 이미 오래 전에 고민하고 정치(精緻)하게 이론화한 분들이 있었음을 알게 됐다. 그것은 내가 생각하고 걸어온 길이 옳은 길임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거기에 더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일탈(逸脫)을 보면서 나는 국가라는 것이 내가 생각해 오던 것만큼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다. 국가공동체의 기본가치에 반하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국가는 국민의 자유와 안전과 행복을 담보해 주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국민의 자유와 안전과 행복을 위협하는 괴물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독일과 중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을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개발연대 기업들의 타성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창의적인 노력을 바탕으로 세계무대에서 외국 거대기업들과 당당하게 경쟁하면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여가고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시장과 기업, 그리고 그 바탕이 되는 개인의 자유와 창의에 대해 더욱 믿음을 갖게 됐다.

    몇 년 전, SNS에서 자신의 이념성향을 측정하는 지표를 가지고 내가 사상적으로 어디쯤 속하는지를 측정해 본 적이 있다. 개인의 자유, 국가의 간섭, 시장 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답하면, 이념성향이 좌표상에 표시되는 설문이었다. 나는 내가 ‘완고한 보수주의자’나 ‘국가주의자’ 정도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결과는 나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상당한 수준의 자유주의자로 나타난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변화하게 된 것은 앞에서 말한 여러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유주의 사상가 12인의 위대한 생각》도 거기에 큰 역할을 했다. 《자유주의 사상가 12인의 위대한 생각》은 내가 만든 책이지만, 나를 변화시킨 책이기도 하다.

    배진영 <월간조선 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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