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겨울 맛 여행1
겨울 진미는 첫눈과 함께 온다. 찬바람이 부는 이맘때면 식도락가들의 혀도 굼실댄다. 맛과 함께 떠나는 겨울 여행은 포구가 제격이다. 올해는 청어 과메기를 맛볼 수 있다니 먼저 포항 구룡포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과메기는 ‘청정한 동해와 차가운 하늬바람이 어우러져 만든 검푸른 보석’으로 불리는 겨울 별미. 그동안 청어가 잡히지 않아 꽁치를 주로 썼는데 최근엔 청어 어획이 늘어 다행이다.

과메기의 어원은 관목(貫目), 즉 말린 청어다. ‘동국여지승람’에 청어가 겨울철 영일만 하구에서 가장 먼저 잡힌다고 기록돼 있다. 이 지역에서 ‘관목’이 ‘관메기’로 불리다가 ‘관’의 받침이 없어지고 ‘과메기’가 됐다. 꽁치 과메기가 색깔이 짙고 쫄깃하다면 청어 과메기는 색이 좀 더 연하고 달짝지근한 감칠맛이 난다. 어느 것이 더 좋다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미식가들은 본디 어종으로 만든 청어 과메기를 더 쳐준다. 그만큼 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메기는 해풍에 꼬득꼬득 말리는 동안 얼었다 녹기를 반복한다. 그 사이에 고소한 맛이 더해지고 영양가도 높아진다. 그래서 예부터 뱃사람들의 보양식으로 불렸다. 겨울 햇김, 햇미역(물미역), 파, 마늘, 고추와 함께 궁합 맞춰 먹는 풍미가 일품이다. 요즘은 영일만 일대뿐만 아니라 서울과 수도권에서도 쉽게 즐길 수 있다. 마포 공덕동의 ‘주락가’ 등 청어 과메기를 본격적으로 취급하는 식당도 늘고 있다.

이왕 동해안으로 길을 잡았으니 울진 후포항도 들러보자. 후포항의 겨울 별미는 대게탕과 물곰(물메기)탕이다. 대게는 찜으로 먹는 줄 아는 사람이 많지만 탕맛도 좋다. 바닷바람에 빨갛게 언 볼처럼 불그레한 국물이 얼큰하면서도 달큼하다. 이곳의 물곰 또한 겨울 진객이다. 남해안에서는 물메기라고 부르지만 이곳 사람들은 물곰이라고 부르는데, 부드러운 살점을 국물과 함께 들이켜면 해장으로도 그만이다.

속초 등 강원 동해안에서는 도루묵과 양미리가 한창이다. 도루묵은 잡아온 즉시 먹어야 제 맛이 난다. 수심 10m 안팎에서 잡히는 ‘알배기’가 으뜸이다. 맛을 좀 안다는 사람들은 도루묵 알의 쫄깃한 식감을 두고 저마다 ‘한말씀’씩 보태며 더 즐거워한다. ‘살 반, 알 반’이라는 알배기 도루묵구이는 뜨거울 때 손으로 들고 후룩후룩 먹어야 제격이다. 술안주로 일품인 양미리도 별미다. 속초항에는 방금 잡은 양미리를 구워 먹는 포장마차가 즐비하다. 날씨가 추울수록 속맛이 뜨거워지는 게 겨울 맛 여행의 또 다른 묘미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