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기·국가 부인하는 공무원도
공직의 존재 이유를 모르는 공무원이 적지 않다고 한다. 내가 속한, 공직 인사를 연구하는 포럼에서 공개된 사례를 소개한다. 국회의원 4명, 인사혁신처장 등이 함께하는 이 포럼에서 몇몇 공직 인사 개선안이 발표됐다. 주제발표에 이어 토론자로 나선 공무원 K국장의 말은 귀를 의심케 할 정도였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고, 애국가 제창을 않겠다는 공무원까지 있다.” ‘북조선공화국’의 당원 관료가 돼야 할 이가 정부에 있다는 얘기다. 그런 공무원조차 솎아낼 수 없을 정도로 공직의 신분을 과보장한다는 게 문제다.
인사혁신처가 보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경쟁 분위기 도입도 좋다. 전문성과 청렴도 제고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헌법을 파괴하려는 이를 공직에 둔 채로는 다 부질없다. 보수 교육과 검증은 이래서 중요하다. 일부 신입 사무관의 좌편향 의식이 심각하다고 인사처 간부들이 걱정만 할 일도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의 가치를 공직에서 먼저 확실히 해둬야 한다. 신입들도 몇 년이면 중견이라고 힘주고, 다시 몇 년이면 금세 리더로 행세한다.
‘공무원이 변해야 나라가 발전한다’는 주제의 그 포럼에서는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나타났다. 공직의 특성을 좀 안다는 소위 인사전문가들도 ‘우수 인재가 몰린 공직…’이라는 말을 연발했다. 우수 인재라는 근거가 기껏 100 대 1을 넘는다는 7급, 9급의 경쟁률이었다. 공시족이 수만명이라는 이유만으로 우수 인재라고? 그러면 경쟁률이 제일 높은 순경들은 공직 내 최우수 그룹인가.
공직 최고덕목 ‘헌법가치 수호’
공무원을 폄하하자는 것도, 공직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터무니없는 칭송으로 말단 실무자들까지 ‘관료’로 둔갑하는 걸 경계하자는 것이다. “구청의 하급직까지 현장을 기피하는 풍조도 걱정”이라는 K국장의 또 다른 지적이 의미심장했다. ‘나, 이래봬도 수백 대 1 시험 통과한 엘리트거든!’ 이런 자부심에 사로잡히는 순간 힘든 업무는 ‘업자’를 찾고, 거친 일은 계약직, 인턴을 시키기 마련이다. 세월호 사건 때 연간 1억원을 받는 현장의 간부가 바다에 뛰어들지 않았다고 비판받은 적 있다. “그렇게 받으면서도…”라는 개탄이 있었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차라리 연봉 5000만원이면 몸을 사리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수당 등으로 1급 급여를 받는 순간 4급직이 특급 관료인 양 착각하는 것이다. 바닷물에 뛰어들라고 위험수당까지 고액을 지급하는데, 거꾸로 “1억원짜리인 내가 어떻게… 잠수업자 불러!”로 된다. 스스로는 업자 동원 계획이나 세우고, 선발 기준이나 정하는 고귀한 관리자가 돼 버린다.
다원화한 민주 시대에 공무원 역할이 뭐가 대수냐는 시각도 있다. 그렇지 않다. 공직은 여전히 중요하다. 나라 망치는 쪽으로 보면 공무원의 영향력은 더 커졌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