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리포트] "텍사스 기적이냐, 캘리포니아 부활이냐"…미국 '경제 롤 모델' 논쟁
대선 앞두고 '텃밭' 띄우는 美 양당

미국의 50개 주(州) 가운데 경제 규모 1, 2위(총생산 기준)는 캘리포니아주와 텍사스주다.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 정치권에서는 이 두 주의 서로 다른 경제정책 모델을 놓고 논쟁이 뜨겁다.

발단은 지난달 초 릭 페리 전 텍사스 주지사가 내년 대선에 공화당 경선 후보로 출마하면서다. 그는 주지사 재임 14년 동안 텍사스가 낮은 세율과 규제 완화를 발판으로 미 전역에서 가장 빠르게 번창했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텍사스 기적(Texas Miracle)’이 재부각했다. 미국에서 기업하기 가장 좋은 곳으로 꼽히는 텍사스는 오랫동안 공화당 경제정책의 롤 모델이었다.

그러자 유력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비롯해 민주당 측은 “텍사스 기적은 셰일오일 활황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깎아내렸다. 대신 “세금을 올려 재정을 튼튼히 하고 다양한 인재를 포용한 캘리포니아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며 대항마를 내세웠다.

“텍사스는 일자리 창출 기계”

텍사스 경제는 2008~2009년 금융위기 이후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셰일혁명이 본격화하면서 에너지산업 중심으로 일자리가 늘었고 미 전역에서 사람이 몰려들었다. 페리 주지사 재임 기간인 2000년 12월~2015년 1월 사이 텍사스에서 새로 생긴 일자리는 220만개. 미국 전체 일자리 10개 가운데 3개가 텍사스주에서 나왔다.

2011년 미 경제가 1.8% 성장할 때 텍사스주는 3.7% 성장해 뉴욕주를 제치고 미국 내 경제 규모 2위 주로 올라섰다. 고성장은 2012년(6.9%, 미국 전체 2.5%) 2013년(3.7%, 미국 전체 1.8%)에도 이어졌다. 지난해 국제유가가 50%가량 폭락했지만 텍사스는 5.2%의 높은 성장률을 유지했다.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도시 중 세 곳(오스틴 휴스턴 샌안토니오)이 텍사스에 있다.

마크 페리 미시간대 교수에 따르면 2008~2014년 텍사스주의 일자리 순증가분은 144만개로, 이 기간 미 전체 일자리 순증가분(117만개)을 웃돈다. 페리 교수는 “텍사스는 위대한 일자리 창출 기계”라며 “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2009년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부자증세, 온실가스 배출 등의 규제 강화 정책을 쏟아내자 공화당 측은 “텍사스를 봐라. 세금을 낮추고 규제를 푸는 게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금 인하·규제 완화 효과 vs 셰일붐 덕분

텍사스는 주 개인소득세와 법인세, 자본이득세가 없다. 세원은 주로 소비세(8.25%)와 재산세(평균 2.57%)로 충당한다. 일하고 투자하는 데 ‘벌(세금)’을 주지 않겠다는 철학이다. 기업을 유치해 인구가 늘어나면 소비가 늘고 부동산 가격도 뛰어 소득세를 받지 않더라도 충분한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텍사스는 각종 세금혜택을 앞세워 대기업을 대거 유치했다. 지난해 캘리포니아에 있던 도요타 미국 본사가 텍사스로 이전을 결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텍사스가 셰일 붐의 혜택을 한껏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풍부한 유전지대라는 지리적 배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정부의 정책이 보다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미국에서 채굴 가능한 셰일오일 매장량의 3분의 2가 캘리포니아 서부해안에 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는 정치적인 이유로 셰일오일 채굴에 필요한 수압파쇄를 허용하지 않는다. 땅속 퇴적암(셰일)에 퍼져 있는 원유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고압의 물을 분사해 지층을 파괴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지하수 오염 등 환경파괴 우려가 있어 환경론자들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반면 텍사스주는 수압파쇄를 적극 허용해 셰일 붐을 이끌었다.

그런데 올 들어 텍사스 기적의 빛이 바래고 있다. 지난 3월 텍사스의 일자리 수는 2만5000여개 감소했다. 월 단위로는 4년 만에 첫 감소세다. 4월에도 1200여개 증가에 그쳤다. 작년 한 해 50만여개가 증가한 것에 비하면 ‘쇼크’ 수준이라는 평가다. 마이클 울프 웰스파고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유가 급락 영향이 시차를 두고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댈러스연방은행은 유가 하락 여파 등으로 올해 텍사스의 일자리 증가율이 1%에 그쳐, 지난해(3.6%)보다 크게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규제 많아도 캘리포니아 경제 활기”

진보 성향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올 들어 나타난 텍사스주의 고용 쇼크를 두고 “론스타(텍사스주의 별칭)가 무너지고 있다”고 공격했다. 그는 “텍사스의 번영은 오일과 가스 때문”이라며 “낮은 세금이 경제번영으로 이어진다는 공화당의 주장은 틀렸음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는 의료보험 교육 복지 등에 대한 과도한 지출로 2010년 재정적자가 600억달러에 달했다. 주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했을 정도로 위기에 처했다. 2011년 민주당 소속 제니 브라운 주지사가 취임한 뒤 수차례 세금 인상과 지출 삭감을 한 끝에 2013년 흑자로 돌아섰다. 12%를 웃돌던 실업률은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있는 구글 애플 등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의 고성장에 힘입어 6.3%로 떨어졌다. 지난해엔 텍사스에서 1년 동안 늘어난 50만여개에 맞먹는 일자리가 생겼다.

캘리포니아의 주 소득세율은 미국에서 가장 높은 13.3%다. 미 세금재단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의 세금부담은 50개 주 가운데 세 번째로 높다. 미 경제주간지 포브스는 캘리포니아의 기업환경이 다섯 번째로 나쁘고, 비용부담은 다섯 번째로 높다고 평가했다. 경제논평가 크리스 스트리트는 “캘리포니아의 성장동력은 외국인 이민자에 대한 포용성과 개방성”이라고 진단했다. 전 세계에서 다양하고 우수한 인재가 몰려와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신기술을 쏟아내는 것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기업환경 속에서도 빠르게 성장하는 원동력이라는 얘기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