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처리에 합의했지만 앞으로 불러올 파장에 대해 정치권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모양새다.

여야가 합의한 국회 정무위원회 수정안은 논란이 되는 조항들을 모호하게 규정한 데다 구체적인 부분은 향후 대통령령을 통해 시행토록 했다.

시행 시기를 1년에서 1년6개월 후로 연장한 것은 국회의원들의 ‘꼼수’가 숨어 있다는 지적이 많다. 내년 4월 치러질 예정인 20대 국회의원 선출을 위한 총선 운동은 법 적용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이 가져올 불만 여론을 피해갈 수 있다. 19대 국회는 법 적용도 받지 않고 수정도 하지 않겠다는 무책임한 처사라는 것이다.

예컨대 8조3항엔 ‘원활한 직무 수행 또는 사교, 의례 또는 부조 목적의 음식물이나 경조사비로 대통령령에서 정하는 가액 범위 내 금품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이 있다. 대통령이 가액 범위를 정하면 그 이후 가액 범위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비난은 고스란히 대통령이 받게 된다.

곳곳에 위헌 소지가 있음을 알면서도 여야가 밀어붙이면서 여론을 의식해 입법 권력을 남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립학교 교사와 언론사 종사자를 포함한 것은 입법자의 주관에 따라 대상을 정한 것이다. 당초 정부안에는 공직자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정무위를 거치면서 ‘공공성’을 이유로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사 종사자로 대상이 확대됐다.

이에 따라 법 적용 대상이 약 300만명으로 늘어나면서 민간 영역을 과도하게 제한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부정청탁의 개념이 모호해 ‘명확성 원칙’에 반하고,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아도 공직자가 100만원 이상의 금품만 수수하면 무조건 처벌할 수 있게 해 ‘과잉금지 원칙’에도 어긋나 모두 위헌이라는 목소리가 법조계에서 나온다.

한 현직 판사는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이 부정청탁인지 아닌지부터 다툴 것이 분명하다”며 “법에서 부정청탁의 종류를 구체적으로 열거했다고 해도 문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밖에 배우자가 금품을 수수했을 때 공직자 신고를 의무화한 부분은 ‘불고지죄’로,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가족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국가보안법조차 이제 불고지죄를 적용하지 않는데 이렇게 되면 김영란법이 국가보안법보다 더 무서운 법이 된다”고 했다. 부정청탁과 관련한 처벌의 예외규정으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가 들어간 것도 위헌 소지를 안고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