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사이먼 쿠즈네츠
경제사가들은 꼭 한번 연구하고 싶은 학자로 사이먼 쿠즈네츠(Simon Kuznets)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20세기 경제학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꼽히는 국민소득계정과 국내총생산(GDP) 개념을 개발했다거나 경기순환론을 체계화했다는 공적 때문만은 아니다. 쿠즈네츠는 역사를 통찰하고 현상을 수량화함으로써 경제 인식의 지평을 넓힌 학자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벨루시아 지방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22년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경제연구소(NBER) 연구원과 하버드대 교수를 지내면서 200여권의 저서와 논문을 펴냈다. 워낙 분량이 방대해서 쿠즈네츠의 논문을 모두 읽은 학자는 쿠즈네츠밖에 없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그는 모든 경제현상을 역사적 관점에서 통찰했다. 특정 시기에 나타나는 경제적 사건은 이전부터 흘러오는 추세적 흐름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발전과 경제성장도 그런 흐름 속에서 전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18세기 이후 약 200년에 걸친 미국 경제 발전 과정과 소득변화를 정리하고 분석했다. 그의 통계적 작업의 엄밀성과 성실성은 하도 유명해 1971년 비즈니스위크는 그를 가리켜 ‘숫자로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케인스의 이론도 쿠즈네츠의 국민소득통계에 대부분 의존했다.

쿠즈네츠가 더욱 유명해진 것은 역(逆)U자 가설을 발표하고 난 뒤부터다.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서는 분배의 불평등이 커지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불평등이 개선된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은 여러 학자의 검증으로 이론화되었다. 특히 알루왈리아 교수가 62개국의 자료를 기반으로 쿠즈네츠의 가설을 검증한 것은 유명하다. 물론 쿠즈네츠 가설이 현실경제에 맞지 않는다는 이론(異論)도 많다. 그는 특히 경제발전이란 경제만이 아니라 낡은 이데올로기와 낡은 제도 등을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물적 성장만으로 안 된다. 물적 성장에 상응하는 국민 의식수준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쿠즈네츠가 1971년 수상한 노벨경제학상 메달이 오늘 캘리포니아주 네이트샌더스에서 경매에 부쳐진다고 한다. 쿠즈네츠는 1985년 숨졌으며 그의 아들 폴 쿠즈네츠가 메달을 경매에 내놓았다고 한다. 폴도 유명한 경제학자다. 하지만 메달 경매가가 그가 쌓은 업적의 가치를 커버할 수 있을까.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