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연말정산 소급적용이란 황당한 미봉책
이번의 ‘연말정산 파동’은 좀 황당하다. 연말정산과 관련해 대체로 세 가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첫째는 소위 ‘13월의 보너스’라고 하는 연말정산 환급금이 많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불공평의 문제, 세 번째는 세 부담 증가의 문제다. 이것이 이번 연말정산과 관련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의 분노를 설명할 세 가지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상당한 연말정산 환급금을 받는 것이 관행처럼 돼 왔기 때문에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좀 서운할 것이라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연말정산에서 환급을 많이 받는다는 것은 원천징수 과정에서 세금을 과도하게 떼어 갔다가 뒤늦게 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고마운 것이 아니다. 허락도 없이 정부가 월급에서 돈을 빼내 사용한 뒤 이자도 없이, 그리고 고마웠다는 말 한마디 없이 슬그머니 돌려주는 돈인 것이다.

어차피 세금은 정해진 것인데 환급금이 있다는 것은 원천징수 때 너무 많이 떼었다는 것이므로 환급금이 클수록 그 이자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손해다. 추징이나 환급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것이 작을수록 징세행정이 효율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런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 가겠다고 정부가 미리 밝혔던 것인데 그 취지가 잘 전달되지 못했을 가능성은 있다.

불공평의 문제는 세금 이야기에서 빠지는 법이 없다. 지난번 소득세제 개편의 가장 중요한 내용 하나는 여러 소득세 감면항목의 감면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꾼 것이다. 이를 통해 한계세율이 높은 납세자의 부담을 늘리는 대신 저소득층의 부담은 더 줄여줌으로써 세 부담의 공평성을 제고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 분야 전문가들이 오래전부터 지적해온 한국 소득세제의 중요한 문제를 개선한 조치였고 많은 공론을 거친 것이어서 충분한 사회적 합의하에서 이뤄진 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조치로 소득세의 공평성은 현저히 개선됐다고 본다. 다만 일부에서 저소득 그룹에 해당하는 납세자들 중에도 이번 조치 후 세 부담이 늘어나는 사례가 있음을 찾아내 이번 세제개편이 정교하지 못했다거나 공평하지 않다고 비판하는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비과세 감면과 관련해 나타난 예외적인 사례를 가지고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납세자마다 사정이 다르고 비과세 감면을 받을 수 있는 여러 행동을 하는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 문제는 세 부담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는 연말정산 환급액이 줄어든 것이 세 부담의 증대라고 잘못 생각하는 납세자들도 있을 수 있고 비과세 감면항목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평균적인 세 부담이 늘어난 현상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상황을 ‘세금폭탄’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무리다. 연말정산 환급금 규모는 원칙적으로 세 부담 규모와 무관하다. 그리고 비과세 감면 축소를 통해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는 박근혜 정부가 처음부터 강조해 온 것이기 때문에 지금 와서 분통을 터뜨릴 일이 아니다. 사실 당초 생각하던 것만큼 비과세 감면을 정비하지도 못했다.

이번 사태에서 정말 황당한 것은 정치권의 반응이다. 세출 쪽에서는 한껏 인심을 써 놓고 비과세 감면을 다시 늘려 그것을 소급적용까지 하겠다니 이런 분들에게 나라살림을 맡겨 놓고 있다는 것이 매우 걱정스럽다.

고령화 속도를 생각할 때 복지제도 도입은 최대한 늦추고 절제해야 한다. 그리고 제도의 설계와 운용에서는 효율 극대화가 강조돼야 한다. 재원조달에서도 효율이 중요하다. 경제왜곡 부작용이 작으면서, 단순 투명한 세제·세정을 추구해야 한다.

곽태원 <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객원논설위원 twkwack@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