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찬구 스포티즌 대표가 16일 서울 청담동 사무실에 걸린 벨기에 프로축구 2부리그 AFC 투비즈 로고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심 대표
는 “AFC 투비즈 운영을 스포츠 마케팅의 성공 사례로 만들겠다”고 자신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가 16일 서울 청담동 사무실에 걸린 벨기에 프로축구 2부리그 AFC 투비즈 로고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심 대표 는 “AFC 투비즈 운영을 스포츠 마케팅의 성공 사례로 만들겠다”고 자신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은행나무 침대’와 ‘쉬리’가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 영화가 있고 H.O.T가 나와 K팝을 이끌었죠. 카트라이더가 한국의 게임산업을 발전시켰고요. ‘AFC 투비즈’가 있었기에 한국의 스포츠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지난해 8월 벨기에 2부리그 AFC 투비즈를 인수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스포츠 마케팅 전문기업인 스포티즌의 심찬구 대표(45·사진)의 포부다. 그의 AFC 투비즈 인수는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석유재벌이나 대기업도 아닌 자그마한 국내 스포츠 마케팅 회사가 국내도 아닌 해외 프로스포츠구단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심 대표는 한국 스포츠산업의 개척자다. 2000년 설립한 스포티즌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독립 스포츠 마케팅 회사다. 그는 국내 스포츠시장이 ‘스포츠산업’으로 변하는 기로에 서 있다고 강조한다. “넥센 히어로즈가 프로야구를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새로운 역사를 썼고 사람들도 이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 프로구단들이 돈을 벌겠다고 생각하면 과거와 달리 과감한 투자가 이뤄질 것이고, 마케팅도 하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세일즈에 나서게 될 겁니다. 이미 돈이 돌고 있는 구조에서 누가 모멘텀을 주느냐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심 대표는 “스포츠가 산업으로 바뀌는 모멘텀 시점에서 관망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주체가 되고 싶다”며 “스포츠산업의 상징적인 존재가 돼 그동안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 노력의 중심에 ‘AFC 투비즈’가 있다. 인수한 지 5개월 된 투비즈는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스포티즌은 지난 15일 박찬길(19)과 임윤택(21)을 영입, AFC 투비즈를 한국 유망주들의 유럽 진출 교두보로 삼겠다는 약속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투비즈에는 우리가 단장만 파견하고 기존 인력을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구단의 재무제표가 그리 나쁘지 않거든요. 1부리그로 올라가면 중계권료와 타이틀 스폰서 수입을 배당받아 바로 흑자로 돌아설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선수를 육성해 이적료 수입을 올릴 수 있고 기업들과 스폰서십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구단 앞에 이름을 붙이거나 구장 이름을 사용하는 ‘스타디움 네이밍’ 등도 가능해요. 단순히 기업 로고 노출이 아니라 꿈을 찾아가는 스토리 마케팅을 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축구를 테마로 한 TV 예능 다큐프로그램도 구상하고 있고요.”

심 대표는 국내 스포츠는 돈을 많이 쓰지만 ‘스포츠 판’을 키우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은 거의 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 최강’으로 손꼽히는 여자프로골프를 예로 들면서 “한국 여자골프는 브라질 축구와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브라질은 유명 선수를 배출해 외국에 팔기만 하지 자국 내 스포츠산업 발전을 이뤄내지 못했어요. 한국 여자프로골프도 미국 LPGA투어에서 맹활약하며 선수들이 상금을 획득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이 대회 스폰서로 나서고 방송사들이 비싼 중계권을 사오느라 오히려 부의 유출이 많은 상태입니다.”

심 대표는 돈을 벌 수 있는 스포츠 마케팅을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구체적인 복안도 꺼내 보였다. 국내에도 미디어산업이 발달하고 골프에 돈을 쓰는 기업들이 있으므로 좋은 선수를 데리고 세계적인 골프 이벤트를 만들 수 있다는 것. “100억원짜리 골프 대회를 만들어 세계적인 선수를 다 모으고 그 콘텐츠를 해외에 팔 수도 있다”며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스포츠 자산을 개발해 이를 한국 기업에 소개하고 선수들의 성장도 도우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모델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人사이드 人터뷰]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 벨기에 프로축구팀 인수…"돈 되는 스포츠 보여주겠다"
심 대표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90학번이다. 연세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교수의 꿈을 안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가 스포츠산업에 안목을 갖게 됐다. 1999년 귀국해 ‘닷컴 열풍’이 불던 시절 친구의 인터넷 기업을 도와주다가 바로바로 피드백이 나오는 비즈니스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평소 스포츠 마니아였던 심 대표는 자본금 1억5000만원을 융통해 직원 4명으로 오피스텔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스포티즌은 스포츠와 시티즌을 합친 말이다. 스포츠를 소비하고 스포츠가 중요한 사람들을 위한 회사가 되겠다는 뜻이다.

스포티즌은 발렌타인챔피언십 등 국내에서 열리는 프로골프대회를 대행하고 장하나 서희경 허미정 등 유명 골프 선수들을 후원하는 등 골프 사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남의 회사 돈을 얻어 쓰는 입장이다 보니 경험과 지식, 노하우가 쌓여갈수록 오히려 이윤은 줄어들었다. 액수가 큰 비즈니스는 대부분 기업이 자체적으로 해결해 다가갈 수조차 없는 영역이라는 한계에 부딪혀야 했다.

“에이전시는 파리 목숨과도 같을 정도로 연약해 지속적으로 성장 가능한 모델을 만들고 싶었어요. 골프시장도 성장에는 한계가 있어 2007년부터 야구 모터스포츠 사이클 테니스 축구 등으로 다변화를 시도하고 투자도 많이 했죠. 국내 사업이 한계에 부딪히자 국경을 넘어서는 회사가 되자고 마음먹었고, 해외에 관심을 가지면서 투비즈 모델을 발견했습니다.”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인천아시안게임,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욕구가 예전 같지 않은 게 사실이다. 심 대표는 “스포츠의 저변을 확대하는 쪽으로 투자가 이뤄져야 스포츠가 산업화되고 일자리도 생겨나 국민들이 받는 혜택도 커질 수 있다”며 “투비즈 프로젝트는 작은 기업의 공격적인 투자가 엄청난 비전을 만들 수 있는 상징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여자골프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여자골프에 좋은 선수가 나오고 관심도 높아지고 있지만 장기적인 미래 계획이 부족합니다. 골프장이 위기에 빠지고 주니어 선수 유입이 줄어들고 있지만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는 현재의 성과물만 나눠 갖기에 급급해 보여요. 주니어 선수 지원이나 저변을 넓히는 노력도 없고요. 말로만 세계적인 투어라고 했지, 여전히 폐쇄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자골프는 오히려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의 특성상 남들이 쉬는 주말에 일하고 야근이 많아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심 대표의 부인 우현주 씨(45)는 현재 ‘해롤드&모드’에서 열연 중인 연극배우다. 그는 “아내도 연극을 마치면 밤 12시가 넘기 때문에 늦게까지 일을 해도 괜찮다”며 껄껄 웃었다.

■ 전망 밝은 스포츠 에이전트

狂팬과 동질감 느낄 만큼 스포츠에 대한 열정 ‘필수’
기업 예산 따먹기는 한계…상품·인프라 만들 능력 키워야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는 미국 유학 시절 만난 친구가 골드만삭스에서 돈도 안 받고 인턴하는 것을 보면서 2001년 인턴제도를 도입했다. 6개월 단위로 7명 정도를 선발하고 있는데 매번 지원자가 200~300명을 넘는다. 인턴사원들끼리 기수를 정해 현재 43기라고 한다. 모두 스포츠 마케팅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스포티즌의 정직원으로 뽑히기도 하고 다른 스포츠 관련 분야로 진출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대기업에 다니다 스포츠 에이전트를 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이들도 늘고 있다.

심 대표는 “스포츠 에이전트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물 위에 떠 있는 오리’와 같다는 말을 한다”며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만 안으로는 ‘노가다’에 가깝고 전형적인 ‘을 비즈니스’다”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스포츠를 좋아해야 합니다. 스포츠에 관심과 열정이 높은 팬들과 동질감을 느껴야 하고 일하는 시간이 즐거워야 하지요. 게다가 성장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예전만 해도 프로스포츠구단 단장으로 자리를 옮긴 대기업 간부들은 ‘물 먹었다’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한다. “단장으로 부임하면 빨리 3년이 지나가기를 학수고대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요즘은 단장들을 만나면 ‘프로스포츠구단 단장이 평생 꿈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지금 ‘드림잡’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심 대표는 “이제 스포츠 에이전트는 해볼 만하고 추천할 만한 일이 됐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이미 대기업들이 상당히 많은 돈을 스포츠에 쓰면서 프로스포츠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며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면 국내 스포츠산업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도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포츠 에이전트는 지식과 경험, 시간, 노력을 기반으로 하지만 이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는데 불편해하는 문화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기업 예산을 가져와 스포츠에다 쓰려고 하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상품을 구축해 인프라를 파는 쪽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혀가는 자세로 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