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브라질 월드컵] 후반교체 히든카드로 결정적 '한 방'…4년전 월드컵대표 탈락 설움 날렸다
박주영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표팀에는 이근호(29·상주 상무·사진)가 있었다. “30분을 90분처럼 뛰겠다”며 각오를 다진 이근호는 후반 11분 박주영과 교체돼 그라운드로 뛰어나갔다. 이근호는 ‘술잔이 식기 전에 돌아오겠다’던 관운장처럼 투입 12분 만에 중거리슛으로 통렬한 선제골을 뽑아냈다. 4년 전 대표팀 탈락의 설움을 날려버린 한방이었다.

이근호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출전 기회를 목전에서 놓쳤다. 월드컵 예선에서 맹활약하며 대표팀을 본선으로 이끌어 허정무호(號)의 ‘황태자’로까지 떠올랐지만 본선 직전 유럽 진출 실패로 컨디션 난조를 겪었다. 결국 허정무 감독은 그의 이름을 최종 명단에서 제외했다.

이근호는 전지훈련지인 오스트리아에서 짐을 쌌다. 이근호는 이후 “자만했고 어리석은 시절이었다”며 “동료들에게 ‘잘하고 오라’는 한마디 하지 않고 도망치듯 돌아온 게 후회로 남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절치부심한 이근호는 소속팀 울산 현대의 아시아 정상 등극을 이끌며 부활했다. 그리고 홍명보 감독의 부름을 받은 뒤 지난해 9월 아이티, 크로아티아와의 평가전에서 2경기 연속골을 넣으며 대표팀의 ‘특급 조커’로 자리매김했다. 이근호는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에 뽑힌 뒤 얼떨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각오를 밝히기 전에 “4년 전의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라는 말을 반복했다.

한국 나이로 서른 살, 전역을 앞둔 병장 이근호는 18일 러시아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생애 첫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그리고 그토록 꿈꿔왔던 무대에서 골을 뽑아냈다. 이근호는 골을 넣은 뒤 거수경례를 했다. 이근호의 연봉은 육군 병장 기준인 178만8000원.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 중 가장 낮은 연봉이다. 부평고 출신인 그가 2004년 인천 유나이티드 창단멤버로 입단했을 당시 연봉 2000만원(계약금 1억8000만원 별도)의 10%도 안된다.

이근호는 골을 넣은 소감에 대해 “설움을 떨치는 상상이 현실이 됐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는 “내 골이 결승골이 못 돼서 아쉽지만 알제리전에서는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각오를 다졌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