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트 자일러 밀레 기술 담당 사장이 귀테슬로 본사에서 밀레가 기술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귀테슬로(독일)=김낙훈 기자
에두아르트 자일러 밀레 기술 담당 사장이 귀테슬로 본사에서 밀레가 기술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귀테슬로(독일)=김낙훈 기자
세탁기 가격이 경쟁제품들에 비해 2~3배 비싼데도 재구매율이 96%에 이르는 제품. 바로 밀레 세탁기다. 밀레가 높은 인건비 속에서도 자국 내 생산을 고집하며 ‘메이드 인 저머니(made in Germany)’로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독일 중부 귀테슬로에 있는 밀레는 세탁기 의류건조기 식기세척기 등을 만드는 고급 가전업체다. 헤르만 지몬의 ‘히든 챔피언’에 소개된 이 회사는 각종 신기록을 갖고 있다. 이 회사 연혁에는 ‘세계 최초’라는 단어가 수없이 등장한다.

밀레 세탁기 산 소비자 96%가 재구매…"탐나는 제품 만듭니다"
1899년 창업한 이 회사는 초기엔 우유에서 크림을 분리하는 기계를 만들다가 1901년 ‘교반기(휘젓개)가 들어있는 목재 세탁기’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고, 1914년에는 전기모터와 탈수장치가 장착된 세탁기를 처음 출시했다. 전기가 풍족하지 않던 당시 모터의 동력은 수력으로 해결했는데 이 수력모터 역시 밀레에서 최초로 개발했다.

1929년에는 전기구동형 가정용 식기세척기를 처음 내놨고 1956년에는 완전자동세탁기를 선보였다. 이밖에 컴퓨터 조절방식 세탁기와 의료건조기, 식기세척기, 허니콤 드럼세탁기를 처음 개발한 것도 이 회사다.

이뿐만 아니다. 또 다른 기록도 갖고 있다. 2005년 독일 소비자연맹은 소비자구매성향 조사에서 “밀레 제품을 산 고객 중 96%가 이 회사 제품을 다시 산다”고 발표했다. 독일 소비자조사를 시작한 1992년부터 2013년까지 매년 고객만족 1위를 기록했다. 리더스다이제스트도 2013년에 가장 신뢰하는 브랜드로 밀레를 선정하기도 했다.

빚도 없이 무차입경영을 하고 전 종업원 1만7000명의 58.8%에 이르는 1만명이 근속연수 25년이 넘는 특이한 회사다. 많은 독일기업들이 고임금을 견디지 못하고 동유럽에서 아웃소싱을 늘리고 있지만 이 회사는 거꾸로 ‘메이드 인 저머니’를 고집하고 있다. 생산공장 10개 중 9개가 독일에 있고 1개는 독일과 접경지역이자 독일어권 국가인 오스트리아에 있다. 불황이 닥쳐도 감원하지 않는다.

미국식 경영에 익숙한 사람들로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경영을 하는 기업이 밀레다. 도대체 어떻게 고임금 국가에서 장기근속자를 데리고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지속 성장하는 것일까.

귀테슬로 본사에서 에두아르트 자일러 기술 담당 사장(59)을 최근 만나봤다. 자일러 사장은 뮌헨대학에서 ‘태양열 에너지의 경제적 사용에 관한 연구’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땄고 컨설팅업체인 맥킨지와 철강업체인 티센, 가전업체인 AEG를 거쳐 1998년 밀레 경영진으로 합류해 기술 총괄 사장을 맡고 있다.

기자와 만난 그는 “밀레 제품이 고가인데도 재구매율과 고객만족도가 높은 것은 마케팅의 힘이 아니라 기술과 품질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소비자가 ‘가장 탐내는 브랜드(most coveted brand)’를 만드는 것이 회사의 비전”이라며 “이를 밑받침하는 게 바로 기술”이라고 덧붙였다.

자일러 사장은 “마케팅에는 전체 매출의 1~2%를 투자하지만 연구개발에는 6% 이상을 쏟아붓는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어떻게 하면 소비자가 행복을 느끼면서 오래 쓸 수 있는지 연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제품이 단종돼도 20년 동안 부품을 보유한다”며 “그만큼 수명이 길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일반적인 가전업체들이 5~10년 정도 부품을 보유하는 것과 큰 차이가 난다.

세탁기의 핵심인 모터에 대해선 1만시간 테스트를 하고 있다. 각종 부품에 대해서도 혹독할 정도의 시험을 한다. 그는 “밀레의 품질기준이 TUV(독일의 차량·기계 정기검사협회)나 VDE(독일의 전기기술자협회)보다 훨씬 높은 것도 까다로운 품질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핵심부품인 모터와 전자식 조달장치 등은 밀레 자체 공장에서 생산한다.

자일러 사장은 “우리는 단순히 내구성에만 주목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기계(thinking machine)’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드럼세탁기와 의류건조기 식기세척기에는 밀레의 특허인 ‘오토센서’ 프로그램이 들어있다. 이는 기계 자체가 지능적으로 작동해 에너지와 옷감손상을 줄일 수 있다.

허니콤 드럼 의류건조기는 주름감소효과가 있고 식기세척기는 세척프로그램과 온도 자동 조절 기능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업데이트 기능’도 있어 신제품이 개발될 때 이 기능을 기존 제품에 입력시켜 쓸 수 있는 혁신적인 개념이다.

동시에 밀레는 ‘철저한 책임의식’을 강조한다. 고객에 대한 책임이 바로 품질과 서비스라면 임직원 사회 환경 등 모든 분야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다. 디자인 과정에서부터 에너지를 절약하고 재활용을 고려한 환경 친화적인 제품을 사용한다. 세계적인 환경기준인 DIN EN ISO 14001을 가전업체 최초로 획득한 것도 밀레다.

이런 기술개발과 ‘메이드 인 저머니’를 고수하는 생산전략, 기능인력을 중시하는 정책 등이 맞물려 밀레를 연간 4조5000억원(2013회계연도, 6월 말 결산)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강한 기업으로 만들고 있다.

밀레는 가족기업이면서 ‘무차입경영’을 하고 있다. ‘독일식 경영’의 전형이다. 그 밑바탕에는 소비자로 하여금 ‘사고 싶어서 안달이 나게 만드는’ 고품질 제품 개발이 있다. 이는 인건비 상승에 따른 대책을 찾는 국내 제조업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어찌보면 밀레는 국내외 많은 경영자들이 꿈꾸는 기업의 모델인지도 모른다.

밀레 세탁기 산 소비자 96%가 재구매…"탐나는 제품 만듭니다"
디터 뢰플러 ‘밀레 마이스터’ “트럭에 재료 싣는 일부터 시작…25년 걸려 마이스터 땄어요”

독일의 기술을 이끄는 원동력은 마이스터(기술장인)다. 밀레도 마찬가지다. 밀레에는 135명의 마이스터가 있다. 25년 이상 근속한 장기근속자들도 거의 마이스터 수준이다. 이들이 기술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디터 뢰플러 조립분야 마이스터(사진)는 1987년 밀레에 입사해 27년째 일하고 있다.

뢰플러 씨는 “처음에는 재료를 분류하고 라인에 투입하고 트럭에 적재하는 일을 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단순 작업부터 시작해 마이스터 밑에서 조립일을 배웠고 입사 후 25년이 지난 2012년 말에서야 마이스터 자격증을 땄다.

독일의 마이스터는 수공업자연합회에서 인증하는 수공업자마이스터, 상공회의소에서 인증하는 산업마이스터 등 여러 종류가 있다. 뢰플러 씨가 딴 마이스터는 직장 내 마이스터다. 어느 마이스터이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존경받는다. 직장 내 마이스터는 수많은 베테랑 동료와 겨뤄 따내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더 뛰어난 인적자원인 경우가 많다.

밀레 세탁기 산 소비자 96%가 재구매…"탐나는 제품 만듭니다"
그는 “마이스터가 됐다고 곧바로 임금이 올라가지는 않는다”며 “다만 직장 내에서 그 전에는 30명을 관리했는데 지금은 120명을 관리할 정도로 책임이 더 무거워졌다”고 말했다. 이같이 하는 일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자연스레 임금도 올라간다.

그는 “마이스터를 따기 전에는 기술에만 치중하면 됐는데 이제는 기술과 사람관리라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며 “사람관리에는 동기부여가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돈보다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다는 점에서 ‘마이스터’가 된 것이 매우 만족스럽다”고 덧붙였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