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는 업무 외적으로 아무런 인연이 없어요.”

삼성전자의 특허침해 소송을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하는 법무법인 율촌 관계자의 말이다. 로펌 대표와 기업 오너 간 특별한 친분 등이 사건 수임에 결정적 요인이 되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옛날 얘기가 됐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15일 본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업마다 ‘단골’처럼 많이 찾는 로펌은 있었다. 현대차 사건은 김앤장이, SK·LG그룹 계열사 사건은 태평양이 주로 대리했다. 최대 고객인 기업 사건 수임을 놓고 로펌 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삼성은 특허, SK는 담합사건 많아

[Law&Biz] 기업과 로펌 '궁합' 있네…삼성-율촌·지평, 현대차-김앤장, SK-태평양 '단골'
2011년부터 올해 3월까지 삼성전자는 서울중앙지법에서 7건의 특허침해 소송을 진행했다. 주로 애플을 상대로 휴대폰 관련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고, 애플로부터 비슷한 소송을 당했다. 현대자동차는 총 129차례의 소송 중 21.7%인 28건의 소송이 근로관계 법률분쟁에서 비롯됐다. 대부분 현대차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파견근로자보호법에 따라 현대차 직원으로 인정해달라는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이다. 정유업이 주력인 SK는 담합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개인택시업자 3만1380명은 SK(주) SK에너지 등을 상대로 1인당 10만원, 총 31억38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과 2차전지 분리막 특허를 두고 벌이는 소송은 2월 SK이노베이션이 1심에서 이겨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LG는 8건의 특허 소송, 3건의 담합 손해배상 소송, 2건의 직무발명 보상금 소송을 각각 진행하고 있다.

○LG는 태평양에 맡겨

삼성 애플 간 특허 소송은 율촌이 주로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는 작년 12월 특허침해 금지 청구소송에서 애플에 패한 이후 항소심 대리인을 기존 광장에서 율촌으로 옮겼다. 율촌은 이외에도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 규모가 큰 5건의 삼성전자 사건을 대리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2월 영국 청소기업체 다이슨을 상대로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제기한 최대 10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율촌이 따냈다.

현대차는 김앤장에 사건을 많이 맡겼다. 김앤장은 현대차가 로펌에 맡긴 42건의 사건 중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20건을 수행 중이다. 총 16건의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 역시 김앤장 변호사들이 맡았다. 로펌에 맡기지 않은 82건의 사건은 현대차 자체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매매대금, 물품대금, 보험금, 자동차 수리비 등과 관련한 1억원 이하 소액 사건은 사내변호사나 직원을 활용했다.

SK와 LG 사건은 태평양이 많이 맡았다. LG 측이 법무법인에 사건을 의뢰한 32건 중 13건을 태평양이 수임했다. △LG전자가 대만의 LCD(액정표시장치) 패널 및 브라운관 제조사 5곳을 상대로 제기한 100억원대 가격 담합소송 △LG 4개 계열사가 국내외 12개 항공사를 상대로 낸 유류할증료 담합소송 등이 대표적 사례다. 특허 소송에서는 김앤장, 광장, 특허법인 AIP 등 다수의 로펌이 LG와 손잡고 소송을 진행했다.

○징벌적 과징금 부과 소송 증가할 듯


4대 그룹 소송의 특징은 특정 로펌과 거래하는 배타적 계약관계는 맺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사내변호사는 “10대 로펌을 골고루 쓰고 있고, 중소형 로펌에도 일을 맡긴다”고 말했다. 이는 한두 개 로펌과만 거래하는 외국기업과 다른 모습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의 로펌 선정 기준은 뭘까. 다른 사내변호사는 △전문성을 가장 많이 보고 △신속한 대응 등 커뮤니케이션 능력 △비용의 합리성 여부 등을 따진다고 전했다.

로펌 입장에서 가장 주목되는 분야는 기업에 대한 과징금 등 감독당국의 징벌적 제재다. 워낙 덩치가 큰 데다 경제민주화 입법과 맞물려 사건이 쏟아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공정거래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의 행정규제에 기업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과징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계했다. 로펌의 밥벌이는 행정법원과 특허법원이 책임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배석준 기자 eul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