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현재 증권 분야에만 적용하고 있는 집단소송제도를 기업의 불공정 행위 전반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동양 사태 때 빚어졌던 기업어음(CP) 불법 판매로 인한 피해 등에 대해서도 피해자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기업 간 담합이나 이른바 ‘남양유업 사태’로 불린 제품 밀어내기에 따른 피해도 집단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

집단소송 요건도 완화된다. 50명 이상 인원이 있어야 집단소송을 낼 수 있던 것에서 20~30명 이상이면 허용하는 안이 개정안에 포함됐다.

법무부는 개정 초안을 바탕으로 공청회를 열고 각계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최종안 확정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만 벌써부터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기업의 경영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며 개정안에 찬성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집단소송 남발로 기업 경영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반대 목소리도 나온다.

개정안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집단소송이 활성화되면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져 기업이 시장 자금 조달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기업의 모든 경영 활동을 감시할 수 없는 만큼 집단소송 활성화로 기업의 불공정 거래를 막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반면 반대하는 측에선 CP 사기나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편승해 집단소송제도의 부작용을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채 서둘러 제도를 도입하려 한다고 반발한다.

또 집단소송제가 확대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기획 소송’ 변호사만 넘쳐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변환봉 법무법인 율 변호사와 전삼현 숭실대 법대 교수로부터 집단소송 확대에 대한 찬반 의견을 들어봤다.

찬성 모든 피해자 구제 받고 기업은 내부통제 강화할 것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은 집단적인 피해를 효율적으로 구제하고 이를 통해 기업의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자 하는 목적에서 제정되었다. 즉 비슷한 피해를 겪고 있는 다수의 피해자가 있음에도 손해액이 작다는 등의 이유로 개별적으로 소송을 제기하기가 곤란할 때 이를 제도적으로 일거에 해결하는 것이다. 이로써 분쟁 해결은 물론 기업의 경영 투명성을 높여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려는 입법적 의도가 있다.

단소송의 긍정적 기능을 좀 더 세분해 살펴보면 이런 입법적 의도가 충실히 구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법경제학적으로, 배상제도는 가해자의 행동에 대한 자율적이고도 합리적인 통제를 가능하게 한다. 즉 당장에 예방 조치를 취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장래에 자신이 지출하게 될 배상액이 더 크다고 여겨질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피해를 사전에 막으려고 하는 동기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더욱이 집단소송은 적극적으로 소송에 참여한 피해자뿐 아니라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모든 소극적 피해자들까지 구제한다는 점에서 기업으로 하여금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사전억제 시스템을 충실히 구비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라는 판단을 하도록 한다. 아울러 이런 자체적인 사전억제 시스템의 구비는 시장 건전성을 증진하는 것은 물론 투자자의 기업에 대한 신뢰를 더욱 높여 시장에서 기업의 자금 조달 등에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이다.

담합·정보 유출 늘지만 솜방망이 처벌 여전

다음으로 규제완화의 측면에서도 규제당국으로 하여금 불공정거래를 감시하는 소극적 기능은 시장 자체에서 형성되는 자율적인 자정 작용에 맡기고, 더 큰 틀에서 적극적인 정책 수행에 집중하도록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이 금융상품이 다양하고 복잡해지는 과정에서 규제당국이 모든 상품에 대해 적절하게 규제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규제 만능주의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규제당국이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하고 사적 분쟁 해결 수단을 통하도록 하는 자율적인 규제가 더 큰 효용성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이 시행된 지 10년에 이르고 있음에도 현재까지 불과 6건의 소송이 제기돼 법의 사문화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이는 입법 당시 우려하던 집단소송의 남발로 인한 기업 경영의 위축이 지나친 기우였음을 보여준다.

히려 집단소송 등의 효과로 그동안 꾸준히 외부감사인에 대한 책임이 강조되며 외부감사인 스스로 감사를 엄격히 하고 있다. 기업 자체적으로도 내부통제 시스템 구비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에서 입법자의 결단이 올바른 방향이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순기능을 고려할 때 증권 외의 분야에서도 적극적으로 집단소송제 도입을 고려함이 타당하다는 근거로 삼을 수 있다.

최근 또다시 문제가 되고 있는 개인정보 유출 문제는 비단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강국을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유독 보안시스템 분야에서만 이토록 맥을 못 춘다는 점이다. 이를 냉정하게 분석해 보면 보안시스템 구축에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과징금 등의 행정적 제재 조치로 지출하는 비용이 훨씬 적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 개인정보 유출에 큰 인식을 갖지 않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몇몇 기업의 LPG, 밀가루 가격 담합 행위 등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피해 역시 담합으로 인한 과징금에 비해 영업이익이 훨씬 크기 때문에 근절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불거지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리고 집단소송이라는 사적 분쟁 해결 수단은 가해자 제재의 측면뿐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원상 회복이 가능하다는 관점에서도 조명돼야 한다. 개인정보 유출이나 담합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설령 규제당국이 해당 기업들에 영업이익 이상의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한다 하더라도 그 수익은 전액 국가에 귀속되는 것일 뿐 피해자에 대한 원상 회복은 아니므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수천만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이나 가격 담합에 따른 피해자들은 미미한 손해액에 비해서 과다한 소송비용이 들어감으로 인해 특별히 공익적인 목적이 있거나 기획소송의 형태가 아니면 소송 등을 통해 손해를 회복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소송제 확대 땐 자율규제…결국 소비자-기업 ‘윈윈’

집단소송은 단순히 기업에 막대한 부담 우려를 주며 기업 경영을 위축시키는 ‘불필요한 규제’가 아니다. 기업이 당연히 갖춰야 할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최선의 사전억제 조치를 충분히 취할 경우 ‘굳이 의식할 필요가 없는 규제’가 되는 것이다. 최근 법무부가 공정거래 분야에서의 집단소송제 도입을 추진 중이고,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집단소송제를 제안하는 것은 단순히 소액 다수 피해자들을 효과적으로 구제하겠다는 사후적 제도의 고안이 아니라 기업들이 사전에 좀 더 완비되고 충실한 시스템을 갖추도록 하는 요청의 발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집단소송은 더욱 활성화되고 그 적용 범위가 확대돼야 할 필요가 있다.

반대 소송 남발로 기업도산 우려…부작용 줄일 ‘안전장치’ 있어야

인터넷상에서 집단 소송을 기획하고 홍보하는 광고들이 급증하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 등과 같이 수만명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하면서 사회적으로 집단소송 요구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집단소송을 활성화하자는 논의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법무부가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 역시 이런 점을 고려한 때문이다. 다만 누구를 위해 무슨 이유로 집단소송제를 활성화하자는 것인지는 충분한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얘기하고 싶다. 집단소송제도는 한국과는 법체계가 전혀 다른 미국형 소송제라는 점에서 도입 당시부터 논란이 됐다. 특히 한국의 증권집단소송법이 시행된 2005년에 미국은 오히려 한국과는 반대의 행보를 보여 반발이 적지 않았다. 한국이 집단소송법을 도입할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쓰레기 같은 소송으로부터 정직한 중소기업인을 보호하고 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며 집단소송을 제한하는 입법을 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에서 제조업이 사라지게 한 원흉으로 집단소송제를 지목하기도 했다.

미국서 비난받은 제도…‘기획 소송’ 변호사만 넘칠 것

집단소송을 활성화하겠다는 법무부의 입법안에 대해 일부 이익단체를 빼고 많은 이들이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법무부가 집단소송제 활성화를 강행하려 한다면 집단소송 활성화의 목적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지난 19일 법무부 산하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개정위원회’가 마련한 안에 따르면 현행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이라는 법률 명칭을 ‘금융투자상품 및 공정거래 집단소송법’으로 변경한다고 한다. 그 대상도 기업어음(CP)이나 파생상품을 비롯한 각종 금융상품의 불건전 영업행위와 공공부문 입찰 비리를 비롯한 기업 간 담합행위로 확대하려 하고 있다.

집단소송 제기요건 중 50인 이상으로 돼 있는 소송인단(구성원) 요건도 20~30명 수준으로 완화하고 소송인단의 증권발행 보유 비율(0.01% 이상 보유)도 더 낮추거나 폐지할 계획이다. 이런 개정안이 나오기까지는 그동안 집단소송이 활발히 진행되지 못함으로써 사실상 유명무실한 증권집단소송법이 제 구실을 못한다는 비판도 작용했을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2005년 증권집단소송법 제정 당시 상황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그때 한국 사회는 경제계의 묵은 관례였던 분식회계를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국내 기업들이 단기간 내 분식회계와 결별하고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많았지만 국내 기업들은 감당해냈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신속하게 회계 투명성을 확보해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마도 이런 놀라운 변화 뒤에는 증권집단소송법이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다시 말해 증권집단소송법은 이미 그 입법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성공적인 입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개정작업이 단순히 집단소송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그 적용범위를 확대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문제는 커 보인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법무부는 다수의 소액 피해자를 구제하고 기업의 경영투명성과 공정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개정안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공정경쟁 촉진 의문…소송요건 완화보다 유지를

지만 여전히 다수의 소액 피해자를 구제한다는 명분만으로 집단소송의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것은 근시안적 해법이다. 여러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대책 없이 묻지마 입법으로 치닫고 있다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소송 남발과 기업도산의 위험성도 있는데 이를 도외시하고 있다. 또 소비자에게 막대한 경제적 비용과 사회적 비용을 전가할 수 있는 폐해를 근절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개정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더욱이 법무부는 집단소송으로 기업의 경영투명성을 제고하고 공정경쟁을 촉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법무부가 마련한 집단소송법 개정안은 입법 목적이 정당하지 않은 법률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 집단의 이익 증대에만 기여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입법인 셈이다.

법은 제재적 역할도 하지만 예방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복잡다단한 21세기형 사회구조 속에서는 법의 기능이 제재보다는 예방적 기능에 역점을 둬야 한다는 점에도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수 있다는 말처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안전 장치 없이 일방통행식으로 입법을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집단소송의 남발을 방지하는 방안을 추가한다면 집단소송법제의 예방적 기능이 제고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미국에서도 널리 인정되고 있는 담보제공명령제도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소송허가 요건을 현재보다 더 완화하기보다는 최소한 현행 수준은 유지해야 한다. 불공정거래와 담합에 대한 성립요건을 공정거래법보다도 더 엄격히 정하는 입법작업도 뒤따르는 게 바람직하다.

다행히 아직 법무부가 개정안을 확정하지는 않았다. 향후 수정 내지 보완의 여지를 남겨둔 건 다행이다.
법무부가 이번 기회를 통해 특정 집단의 이익보다는 국가경제발전이라는 공익에 더 기여하는 기관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읽을 만한 자료

△증권관련 집단소송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한국금융연구원, 2010. 10)
△증권관련 집단소송에 관한 연구(한국법학회, 2009.5)
△증권 집단소송제도에 대한 경제학적 검토(자유기업원, 2000. 12)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