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의 인터넷실록] 100년 만에 일본서 독립한 '김의 그후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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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 우리의 오랜 전통 먹거리라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양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어서 입니다.
사전, 지식 등 각종 인터넷 자료에 따르면 ‘김’을 일컫는 ‘해의(海衣)’ 등이 ‘경상도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같은 문헌에 등장하고 있다 합니다. 심지어 ‘삼국유사’에도 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는 얘기고요. 그렇다면 ‘김’이 ‘김’으로 불린 유래는 무엇일까? 물음에 대해 인터넷으로 범위를 한정할 경우 답은 “김을 처음 양식한 이의 성이 김씨라서”라는 게 들립니다. 인터넷에서는 이 내용이 거의 정설로 통하는 분위기인데요.
이처럼 김씨 유래설이 광범위하게 알려진 것은 15개월 전쯤인 2012년 10월 한 방송사의 ‘퀴즈쇼’에서 비롯합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슈퍼주니어 멤버 은혁-예성 팀이 사지선다형에서 정답으로 제시된 이 내용을 맞췄습니다.
네이버 두산백과사전에 따르면 SBS 퀴즈쇼 정답의 근거가 된 주인공은 조선 인조 18년 (1640년) 태인도에 들어와 ‘해의’를 양식했다는 비문이 전해지는 김해김씨 ‘金여익’이라는 분입니다. 김으로 불린 유래는 이 외에도 다른 설도 거론됩니다.
김은 이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 식품이긴 하지만 경제 산업적으로는 참으로 ‘뼈아픈’ 사연도 가졌습니다.국내에서 생산하는 김의 씨 또는 종자가 대부분 일본산이었기 때문입니다.
김 종자의 일본 종속은 1910년 이래 거의 100년 이상 지속돼 왔습니다. 김씨로 따지면 1945년 광복은 의미가 없었다는 얘기에 다름 아닙니다.
수산과학원 해조류바이오연구센터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국내에서 생산된 김 품종은 60%가 일본산이고, 나머지는 정체불명의 무명종자로 조사됐습니다. 특히 등록된 종자만 놓고 보면 100% 일본산. 토종 김씨가 말랐다는 표현이 가능합니다.
이처럼 김씨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종속돼 온 것은 국내 김종자 산업의 ‘영세성’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2010년 기준 국내 김생산액은 2300억원대 (수출 1100억원 포함)에 이를 정도로 작지 않은 편입니다.
하지만 국내 김종자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애처럽습니다. 규모가 고작 60억원대 (275만상자)에 머문 실정입니다. 이에 따라 1개 김종묘 업체당 연평균 생산액은 2000만원 수준에 불과합니다. 기업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분석입니다.
때문에 토종 김씨에 대한 연구개발의 여지가 없다는 지적입니다. 게다가 그동안 김 생산에 필요한 종자가 일본산 이든 또는 다른 나라든 별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는 게 일반적이었고요.
김씨의 국내 형편이 이런 가운데 2012년 1월, 국내 김생산업체, 김종자업체, 김소비자에게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김씨를 지식재산권으로 보호해 주는 제도가 시행된 것입니다. ‘해조류 품종보호제도’인데요.
이는 새로운 김씨를 개발할 경우 25년 동안 ‘독점적인’ 실시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제도가 시행된 시기를 놓고 볼 경우 1987년 이후 등록된 김씨가 해당됐습니다.
국내 김 농장은 때문에 1987년 이후 출원된 일본산 김 종자를 자칫 이용할 수 없을 지도 모를 상황에 처한 겁니다. 일본인 개발자가 허가하지 않으면 김양식을 할 수 없게 되는 까닭. 허가를 받더라도 사용료를 내야하는 것은 당연지사.
로열티가 3~6%에 이르러 국내 김 시장 규모를 감안할 경우 연간 최대 20억원대의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파악됐고요. 이 경우 궁극적으로 국내 김 애호가들에게도 악영향이 미칠 수 밖에 없습니다. 김 가격이 오를 가능성에서 입니다.
이 때 다행스럽게도 오랜 세월 ‘김씨의 독립’을 위한 투쟁을 벌여온 연구기관이 존재했습니다. 전라남도 해양수산과학원이 그 주인공인데요. 이 곳에서 3년간의 연구 끝에 ‘슈퍼김 1호’라는 이름을 붙인 최초의 국산 김씨를 개발했습니다.
순수하게 국내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이 종자를 기초로 CJ제일제당이 상품김 (조미김 : 햇바삭 토종김)을 1년 전인 2013년초 선보였고요. 이를 통해 100년여 세월 일본산 김씨 의존에서 마침내 벗어났습니다.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박주동 박사는 우리 전통 식품인 김종자가 일본산 종자를 써왔다는 사실에 안타까워 하다가 이의 국산 개발 소식에 속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고 털어놨습니다.
CJ제일제당측은 지난해 첫 해 이 제품으로 국내 시장에서 1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2014년엔 해외 (영국) 시장 수출도 추진 중이라고 합니다.
토종 김씨가 일본으로 부터의 ‘독립’ 쟁취는 물론 더 나아가 외화를 벌어들이는 ‘효자’ 노릇까지 할 태세인 셈입니다.
이 회사는 새로운 김종자 개발 투자에도 적극 나서 한국 중국 일본 삼국이 펼치는 ‘김씨의 전쟁’에서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입니다.
한경닷컴 뉴스국 윤진식 편집위원 jsyoon@hankyung.com
사전, 지식 등 각종 인터넷 자료에 따르면 ‘김’을 일컫는 ‘해의(海衣)’ 등이 ‘경상도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같은 문헌에 등장하고 있다 합니다. 심지어 ‘삼국유사’에도 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는 얘기고요. 그렇다면 ‘김’이 ‘김’으로 불린 유래는 무엇일까? 물음에 대해 인터넷으로 범위를 한정할 경우 답은 “김을 처음 양식한 이의 성이 김씨라서”라는 게 들립니다. 인터넷에서는 이 내용이 거의 정설로 통하는 분위기인데요.
이처럼 김씨 유래설이 광범위하게 알려진 것은 15개월 전쯤인 2012년 10월 한 방송사의 ‘퀴즈쇼’에서 비롯합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슈퍼주니어 멤버 은혁-예성 팀이 사지선다형에서 정답으로 제시된 이 내용을 맞췄습니다.
네이버 두산백과사전에 따르면 SBS 퀴즈쇼 정답의 근거가 된 주인공은 조선 인조 18년 (1640년) 태인도에 들어와 ‘해의’를 양식했다는 비문이 전해지는 김해김씨 ‘金여익’이라는 분입니다. 김으로 불린 유래는 이 외에도 다른 설도 거론됩니다.
김은 이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 식품이긴 하지만 경제 산업적으로는 참으로 ‘뼈아픈’ 사연도 가졌습니다.국내에서 생산하는 김의 씨 또는 종자가 대부분 일본산이었기 때문입니다.
김 종자의 일본 종속은 1910년 이래 거의 100년 이상 지속돼 왔습니다. 김씨로 따지면 1945년 광복은 의미가 없었다는 얘기에 다름 아닙니다.
수산과학원 해조류바이오연구센터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국내에서 생산된 김 품종은 60%가 일본산이고, 나머지는 정체불명의 무명종자로 조사됐습니다. 특히 등록된 종자만 놓고 보면 100% 일본산. 토종 김씨가 말랐다는 표현이 가능합니다.
이처럼 김씨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종속돼 온 것은 국내 김종자 산업의 ‘영세성’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2010년 기준 국내 김생산액은 2300억원대 (수출 1100억원 포함)에 이를 정도로 작지 않은 편입니다.
하지만 국내 김종자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애처럽습니다. 규모가 고작 60억원대 (275만상자)에 머문 실정입니다. 이에 따라 1개 김종묘 업체당 연평균 생산액은 2000만원 수준에 불과합니다. 기업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분석입니다.
때문에 토종 김씨에 대한 연구개발의 여지가 없다는 지적입니다. 게다가 그동안 김 생산에 필요한 종자가 일본산 이든 또는 다른 나라든 별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는 게 일반적이었고요.
김씨의 국내 형편이 이런 가운데 2012년 1월, 국내 김생산업체, 김종자업체, 김소비자에게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김씨를 지식재산권으로 보호해 주는 제도가 시행된 것입니다. ‘해조류 품종보호제도’인데요.
이는 새로운 김씨를 개발할 경우 25년 동안 ‘독점적인’ 실시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제도가 시행된 시기를 놓고 볼 경우 1987년 이후 등록된 김씨가 해당됐습니다.
국내 김 농장은 때문에 1987년 이후 출원된 일본산 김 종자를 자칫 이용할 수 없을 지도 모를 상황에 처한 겁니다. 일본인 개발자가 허가하지 않으면 김양식을 할 수 없게 되는 까닭. 허가를 받더라도 사용료를 내야하는 것은 당연지사.
로열티가 3~6%에 이르러 국내 김 시장 규모를 감안할 경우 연간 최대 20억원대의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파악됐고요. 이 경우 궁극적으로 국내 김 애호가들에게도 악영향이 미칠 수 밖에 없습니다. 김 가격이 오를 가능성에서 입니다.
이 때 다행스럽게도 오랜 세월 ‘김씨의 독립’을 위한 투쟁을 벌여온 연구기관이 존재했습니다. 전라남도 해양수산과학원이 그 주인공인데요. 이 곳에서 3년간의 연구 끝에 ‘슈퍼김 1호’라는 이름을 붙인 최초의 국산 김씨를 개발했습니다.
순수하게 국내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이 종자를 기초로 CJ제일제당이 상품김 (조미김 : 햇바삭 토종김)을 1년 전인 2013년초 선보였고요. 이를 통해 100년여 세월 일본산 김씨 의존에서 마침내 벗어났습니다.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박주동 박사는 우리 전통 식품인 김종자가 일본산 종자를 써왔다는 사실에 안타까워 하다가 이의 국산 개발 소식에 속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고 털어놨습니다.
CJ제일제당측은 지난해 첫 해 이 제품으로 국내 시장에서 1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2014년엔 해외 (영국) 시장 수출도 추진 중이라고 합니다.
토종 김씨가 일본으로 부터의 ‘독립’ 쟁취는 물론 더 나아가 외화를 벌어들이는 ‘효자’ 노릇까지 할 태세인 셈입니다.
이 회사는 새로운 김종자 개발 투자에도 적극 나서 한국 중국 일본 삼국이 펼치는 ‘김씨의 전쟁’에서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입니다.
한경닷컴 뉴스국 윤진식 편집위원 js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