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의 정신은 질문과 호기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항상 질문을 하고 어떤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와 모든 것을 궁금해 하는 문화가 중요합니다. 전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데도 노벨상 수상자의 25%가 유대인인 것도 이런 문화와 무관치 않습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리 구트만 주한 이스라엘 대사가 ‘한경과 맛있는 만남’을 위해 지난달 25일 잡은 장소는 서울 무교동의 고기집 참숯골이었다. 올 8월에 부임한 구트만 대사는 1주일에 한 번 정도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두 아이의 식성이 까다로워 외국 근무를 할 때마다 입에 맞는 음식을 찾기가 힘든데 아이들이 갈비를 아주 좋아한다”는 게 단골로 삼은 이유다. 물론 본인 스스로 ‘갈비광’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한국에 부임하기 앞서 대만과 중국 상하이 공관에서도 근무해 동양 문화가 친숙하다”는 그는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길을 지날 때마다 기분이 좋다고 했다. 6·25전쟁 당시 도움을 준 국가들의 국기 가운데 이스라엘 국기도 게양돼 있기 때문이다. 1949년 건국한 이스라엘은 이듬해 발발한 6·25전쟁 초기부터 재정 지원을 했다. 구트만 대사는 “당시 이스라엘도 전쟁 중이어서 병력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물자 지원을 통해 지지를 표하고 싶었다”며 “한국에 강한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며 양국 국민이 더욱 가까워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는 5일부터 7일까지 서울 광장동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리는 ‘글로벌 인재포럼 2013’의 기조연설자로 참석하는 에후드 바라크 전 이스라엘 총리와 같은 부대에서 근무한 인연이 있다는 구트만 대사는 포럼에 큰 기대를 나타냈다. 그는 “한국과 이스라엘은 서로 배울 것이 많은 국가”라며 “이번 포럼을 통해 한국 정부가 추구하는 창조경제와 관련한 이스라엘 교육 및 창업 모델의 진면목을 알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인, 이스라엘 사람보다 ‘탈무드’ 더 많이 읽어”

숯불 위에서 익어가는 고기를 바라보는 그에게 한국에 부임한 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유대교 성전인 탈무드를 많이 읽는다는 것입니다. 정작 이스라엘 사람들은 랍비 등 종교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읽지 않거든요. 단언컨대 한국인이 이스라엘인들보다 더 많이 읽을 거예요.”

물론 그는 한국인들이 종교적인 목적이 아닌 교육적인 목적으로 탈무드를 읽는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한국과 이스라엘의 교육열은 비슷한 점이 많은데 특히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공감을 표했다. 한국 어머니들이 자녀 교육에 들어가는 돈을 아끼지 않듯 이스라엘 어머니들도 자녀가 좋은 직업을 가질 때까지 전폭 지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인이 탈무드에 나타난 이스라엘 교육의 내용에만 주목할 뿐 그 안에 들어 있는 정신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탈무드의 정신은 질문과 호기심을 강조하는 것”이라며 “항상 질문을 하고 어떤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와 모든 것을 궁금해 하는 문화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데도 노벨상 수상자의 25%가 유대인인 것도 이런 문화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본인도 학창시절 질문이 많은 학생이었느냐’는 물음에 “또래 친구들처럼 독특한 질문으로 선생님을 당황하게 하는 걸 좋아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야기하는 사이 고기가 먹을만큼 익었다. 인재포럼을 앞두고 만난 만큼 자연히 교육 관련 대화가 좀 더 이어졌다. 그는 한국과 이스라엘을 작지만 강한 나라로 만든 높은 교육열은 비슷한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20세기 초까지 유대인은 유럽에서 차별받았습니다. 군인이나 관료가 될 수 없었기에 학술과 무역활동에 종사하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건국 이후 빠른 발전을 이룩하는 토대가 됐죠. 6·25전쟁 뒤 한국의 고속성장이 가능했던 것도 전통적으로 내려온 교육 중시 풍조가 있었기 때문으로 압니다.”

○“이스라엘은 군대가 창업학교”

불판에서 고기가 익어가듯 분위기도 화기애애하게 달아올랐다. 국적은 달랐지만 병역을 마친 남자들이 모였으니 군대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 하지만 구트만 대사가 들려준 이스라엘 군대의 모습은 한국과는 많이 달랐다.

“이스라엘 창업 생태계에서 창업자들의 군생활 경험은 빠뜨릴 수 없는 자산입니다. 학교에서 호기심을 갖고 의심하는 법을 배웠다면 군대에서는 책임감과 근성을 배웁니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10명 이상 또래 젊은이의 생사가 좌우될 수 있는 상황을 경험하고 나면 창업 이후 웬만한 곤경을 겪더라도 빠르고 정확한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는 “군대에 입대하면 누구나 높은 수준의 기술교육을 받을 수 있어 제대한 뒤 군에서 습득한 능력으로 창업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스라엘에서는 군 경험이 창업으로 이어진 사례가 많다. 올해 5월 파산했지만 한때 ‘전기차 업계의 애플’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승승장구한 전기차 배터리 충전업체 ‘베터플레이스’가 대표적이다. 공군 출신 퇴역 군인들은 전투기 엔진 교체 방식에 착안해 배터리를 통째로 바꿔주는 전기차 충전소 모델을 상용화했다. 전기차의 고질적인 문제인 오랜 충전시간을 군에서 배운 기술로 해결한 것이다. 지금도 세계 의약 시장에 자리잡고 있는 캡슐내시경(알약 형태로 몸에 들어가는 내시경)의 선구자 필캠도 군에서 미사일 카메라를 연구하던 기술자와 의사가 의기투합해 세운 회사다.

이렇게 태어난 회사들이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면 글로벌 기업에 팔리거나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다. 올해 6월 애플과의 경합 끝에 구글이 9억6600만달러(약 1조240억원)에 인수한 내비게이션 서비스 업체 ‘웨이즈’가 대표적인 예다. 벤처로 성공한 기업들이 잇따라 미국 기업에 팔리는 것에 대해 구트만 대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스라엘이 인구 770만명의 작은 나라라는 걸 생각해야 합니다. 외부의 자본과 시장을 이용하지 않으면 성장하기 힘듭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에는 ‘연속적 창업자(serial entrepreneur)’라는 독특한 개념이 있습니다. 창업을 해서 회사가 성장하면 회사를 판 뒤 다시 창업에 나서는 거죠.”

○“마쉬베르, 혼란과 기회는 하나다”

갈비와 함께 비빔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 구트만 대사는 “맛있는 만남을 하자고 불러놓고 나만 맛있게 먹는 것 같다”며 웃었다. 한국 생활이 아직 3개월도 지나지 않은 대사의 한국음식 사랑은 대단했다.

불판에 줄어드는 고기의 숫자만큼 분위기가 편안해지자 구트만 대사는 한국을 위한 고언(苦言)을 쏟아냈다. “요즈마 펀드 등 이스라엘 모델이 한국에서 각광받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스라엘의 모델이지 한국의 모델은 될 수 없다”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한국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독자적인 창업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실패는 성공의 자산이라는 말을 몇 차례나 되풀이해 강조했다.

“이라크 등 적대국의 요격 위험 때문에 이스라엘은 지구 자전 반대 방향인 서쪽으로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유일한 국가입니다. 그만큼 개발 과정에 시행착오가 많았죠. 1980년대에는 독자적으로 전투기를 개발하다 미국의 압력으로 그만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실패 과정을 겪으며 이스라엘은 우주·항공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을 축적한 것입니다. 요즈마 펀드 역시 수많은 실패를 통해 얻은 결과물입니다.”

구트만 대사는 “히브리어로 산모의 출산용 의자를 뜻하는 ‘마쉬베르(mashiber)’는 혼란과 공황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며 “새 생명의 탄생 과정과 공황이 같은 단어로 쓰인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그만한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정부든 창업자든 한국도 더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의 성공모델을 만들어가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부임한 지 얼마 안돼 매일 일만 하고 있다”는 구트만 대사는 “퇴임사를 한국어로 하는 게 작은 꿈”이라고 말했다.
우리 구트만 대사의 단골집 참숯골 - 農家서 직접 공수한 '1등급 한우'

새로 지은 서울시청 오른쪽 길을 5분 정도 곧바로 가다 네거리를 건너면 체육회관 2층에 자리잡은 고기집 ‘참숯골’의 간판을 볼 수 있다.

시내 한복판에 있어 인근 대기업 직원과 공무원들의 발길이 잦다. 2000년 6월에는 한국관광공사가 꼽은 ‘이달의 가볼 만한 식당’으로 선정됐다.

사육농가에서 직접 구매하는 1등급 한우를 쓰는 게 가장 큰 강점이다. 안창살과 생갈비(각 6만4900원·140g), 꽃등심(5만3900원), 양념갈비(5만2800원) 등을 많이 찾는다. 대추 인삼 콩 등이 들어가는 영양돌솥밥(1만3000원)도 직장인 실속파들에게 인기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문을 연다. 명절과 새해 첫날, 크리스마스를 제외하고 연중 무휴다. (02)774-2100

노경목/박병종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