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금융이 멀쩡한 기업도 말려 죽이나
어렵지 않은 기업이 없다. 웅진 STX에 이어 동양이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다음은 어느 기업 차례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자금 시장은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나름대로 기업금융 비중이 높다는 한 은행장 방에 며칠 전 대기업 총수가 찾아왔다. 업황 탓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다. 그의 손에는 스크랩된 신문 기사가 들려 있었는데, 기사 제목이 ‘내 임기 중 비 올 때 우산 뺏는 일 없을 것’이었다. 그 은행장의 인터뷰 기사였다. 내용은 이랬다. “어려운 기업에 대한 대출을 줄이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우리마저 발을 빼면 이런 시기에 어느 은행이 기업금융을 하겠나. 힘들더라도 함께 살아남는 고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내 임기 동안엔 비 올 때 고객의 우산을 뺏는 일은 없도록 할 것이다.” 참 올바른 금융회사 경영관이다 싶다.

기업 총수도 그 기사를 읽고 크게 고무됐던 것 같다. 신문 기사를 내밀면서 선처를 부탁했다. 그런데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은행장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시장 상황을 봐가며 결정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이 되돌아 왔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한 말은 어디로 갔는지.

“은행도 비를 맞고 있으니, 우산을 빼앗아 와야 한다.” 이 금융그룹의 연구소가 얼마 전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워크숍에서 발표한 보고서의 요지다. 현실론이라는 용어로 포장했지만 은행이 이런 보고서를 낸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은행은 면허산업이다.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해주면서 돈을 벌 수 있도록 국민이 허가해준 산업이라는 얘기다. 외환위기 이후 168조원이라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려낸 것이 한국의 은행산업이고, 은행 수를 절반으로 줄여줘 경쟁 없는 과점 효과까지 만끽하고 있는 곳이 바로 한국의 은행들이다. 실체도 없는 금융허브 전략으로 금융 산업에서 차지하는 은행의 지배력은 거의 무한에 가까워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예대마진과 수수료 따먹기 장사만으로 땅 짚고 헤엄을 치고 있다. 그런 은행들이 비가 내린다고 우산을 걷겠다는 것이다.

회생 불가능한 한계기업을 서둘러 정리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그런 기업들이야말로 속전속결로 정리해야 하는 법이다. 문제는 멀쩡한 기업까지 말려 죽이는 데 있다. 업황의 침체와 단기 자금 경색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제때 지원해 숨통을 터주는 것이 은행의 역할이다. 그런 본연의 기능을 외면한 채 수익성 확보를 위해 기업금융을 축소하겠다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정책금융기관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웅진이나 STX가 망가지는 과정에서 정책금융기관들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면서 자금 지원을 미룬 탓에 기업의 활로는 갈수록 좁아졌고, 지원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 채권단 손실도 한없이 커졌다. 정책금융기관다운 모습은 이제 어디서고 찾을 수 없다.

더 한심한 것은 정부 역할이다. 금융감독원장이 이제 와서 한다는 얘기가 빚 많은 기업 감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동안은 무엇을 했는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건설 조선 해운 등의 업종에 대해 옥석을 가리는 선제적 대응을 약속했던 것도 금융당국이다. 과연 뭘 어떻게 선제적으로 대응했길래 이 모양인지.

동양 사태도 마찬가지다. 동양이 오래전부터 자금난을 기업어음(CP) 돌리기로 막아왔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그런데도 동양 사태가 곪을 대로 곪아서야 금융감독원이 금융위에 보고를 했고, 그제서야 특정금전신탁과 CP 판매에 대한 규제, 주채무계열 제도와 채권발행 공시제도의 개선 방안을 들여다봤다면 누가 이해하겠는가.

정책도 감독도 없는 금융당국이다. 그런 한심한 당국자들이 정책과 감독의 책임을 지기는커녕 금융공기업과 주요 금융회사 고위직으로 줄줄이 낙하산을 탄다. 금융 산업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는가.

세계적인 기업을 잇따라 배출하고 있는 제조업과는 달리 금융 산업은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로 남아 있다. 한가롭게 창조금융을 거론할 때가 아니다.

후진성도 면치 못하는데 무슨 창조가 가능한가. 금융 산업이 멀쩡한 기업까지 잡아먹는 ‘좀비 산업’이 되지 않기를 빌 뿐이다.

<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