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알리기 30년…경기관광홍보대사 된 日배우 구로다 후쿠미
“파주로 출발합니다. 율곡 이이 선생 기념관이 있는 자운서원은 작년에 다녀왔고요. 오늘은 석물과 동자상이 유명한 용암사와 헤이리 예술촌, 출판단지를 둘러볼 겁니다.”

2002 한·일 월드컵 조직위원회 이사, 경북 포항 홍보대사, 2012 여수엑스포 홍보대사 등을 맡아 30년간 한국을 일본에 알려온 일본 여배우 구로다 후쿠미 씨(57·사진)가 다시 한국을 찾았다. 경기도 관광홍보대사에 위촉된 뒤 또 한번의 한국 여행을 위해서다.

방문기간은 지난 한 주간. 빡빡한 일정에 인터뷰 시간이 여의치 않아 최근 그가 묵고 있던 경기 고양시 장항동 엠블호텔 킨텍스를 찾았다.

“지난해부터 서울에서 가까운 수도권 소도시를 둘러보고 있어요. 1994년 출간한 ‘서울의 달인’은 2002년 세 번째 개정판을 끝으로 더 이상 안 내도 될 것 같아요. 이제 서울을 떠나 주변의 작은 도시들을 책으로 엮어볼 생각이에요.”

구로다 씨가 최근 다녀온 곳은 이천, 인천, 안성, 수원, 파주 비무장지대(DMZ), 강화도 등이다. 안성은 남사당패의 본고장이요, 이천은 쌀과 도자기가 유명하고, 인천은 작은 어촌에서 이국적인 항구로 변해 인상적이었다는 설명이 여느 한국인 여행작가 못지않다. 그는 이 여섯 곳의 이야기를 묶어 올 여름 ‘한국 구르구르-서울을 떠나’ 편으로 책을 낼 계획이다.

구로다 씨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3년. 당시 배구 스타 강만수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부터다. 어머니와 고교시절 역사 선생님의 영향으로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 대해 알고 있던 터에 강 선수의 플레이에 매료돼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것.

“어머니와 선생님께서 제 가슴속에 ‘한국’이라는 씨앗을 심어주셨고, 강 선수가 그 싹을 틔워준 것 같아요. 이후 한국에 대해 공부를 계속하면서 한·일관계의 심각성을 알게 됐죠. 식민지배 반성은커녕 아직까지도 재일교포들을 차별하는 일본인들이 부끄러웠어요. 그들을 보면서 한국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이해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한국 홍보대사’로 살겠다는 결심은 배우 생활을 하며 하나하나 실천해왔다. 1984년 NHK방송 한글강좌를 통해 한국어를 독학했고, 이듬해 간사이TV의 ‘구로다 후쿠미의 한국로드’ 프로그램을 기획해 직접 리포터로 활동했다. 2002년엔 한·일 합작 드라마 ‘프렌즈’, 2004년 ‘유리화’, 2011년 영화 ‘머나먼 하늘’ 등에 출연하기도 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인 30년을 함께했기에 “한국과 결혼했다”고 말하는 구로다 씨. ‘절반의 한국인’으로 살아온 소감을 물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인인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이젠 의심의 여지 없이 ‘이 길이 내 길이다’ 싶어요.” 구로다 씨는 현재 미혼이다.

자신에게 꿈이 있다고 했다. “한국의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 하는 일도 그 꿈을 향한 과정이고요. 방송과 책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서로 많이 알게 되고, 나아가 서로 이해하는 관계를 만드는 가교가 되고 싶습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