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반, 아직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시골 마을에 두 명의 동갑내기 초등학생이 있었다. 둘은 평소 친한 사이였지만 학교에서는 치열하게 1등을 다투는 맞수였다. 시험 기간이면 둘의 경쟁은 치열했다. 석유 등잔불로 밤을 밝히던 시절 서로 건너편 친구의 집에 불빛이 꺼질 때까지 버티다 보니 밤을 새우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다 한 친구가 방안의 불빛이 새나가지 않도록 방문을 큰 천으로 가렸고, 나중에야 그걸 알게 된 경쟁자도 그렇게 했다. 성인이 된 둘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중요한 위치에 올랐고, 왕성한 활동으로 역량을 발휘하며 사회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지금도 둘은 여전히 죽마고우다.

예나 지금이나 맞수 간 선의의 경쟁은 도처에 있다. 지난 세기 클래식 음악 대중 화에 큰 획을 그었던 지휘의 거장 카라얀과 번스타인. 음악과 청중에 대한 생각과 스타일은 서로 달랐지만 음악 사랑만큼은 둘 중 누구도 뒤지지 않았다. 애호가들의 극성스런 호불호에도 불구하고 번스타인은 나이가 더 많은 카라얀에게 누구보다도 애정 어린 존경을 보냈다.

피겨의 여왕 김연아 선수와 아사다 마오는 또 어떤가. 누가 봐도 맞수임에 틀림없다. 둘 간의 경쟁은 피겨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피겨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고흐와 고갱의 그림을 통한 우정과 경쟁, 반상의 제왕이었던 조훈현과 서봉수, 주먹으로 세계를 양분했던 무함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맞수들은 그들의 지속적인 노력과 합당한 경쟁을 통해 해당 분야에 대한 수요자들의 관심과 애정을 창출시킴으로써 상처뿐인 영광이 아닌 상생과 발전을 이룩해왔던 것이다.

시장(市場)도 마찬가지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과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앞서거니뒤서거니 치열한 경쟁으로 함께 시장을 키우면서 성장하는 맞수 기업들은 소비자에게 지속적인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인류 삶의 질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고 있다.

며칠 전 수출탑을 수상한 업종들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그동안 꾸준히 기술개발과 상생의 경쟁을 통해 세계화를 시도했던 노력의 결실이 아닌가 싶다. 한국의 석유산업, 자동차산업, 전자산업, 조선산업 등은 맞수 경쟁을 통해 새로운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고 밸류 체인을 확대하면서 상생과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앞으로는 수십년간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소재, 산업재 위주의 중후장대형 산업뿐만 아니라 부가가치가 높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맞수 기업들이 많이 탄생해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글로벌 경쟁력의 지평을 확대해 나가기를 기대해본다.

절대 강자 하나만 있는 시장은 결국 왜곡되고 그 피해는 그 기업과 소비자에게 되돌아간다. 맞수 간의 건강하고 끊임없는 경쟁은 상생하는 시장을 만들어내 기업은 더욱 발전하고, 시장은 커지고, 소비자 서비스는 더 좋아질 것이다.

문종훈 < SK마케팅앤컴퍼니 사장 jhm@sk.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