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출범 초기 오바마 정부는 1980년대 초 레이건 행정부가 추진했던 ‘레이거노믹스’를 벤치마크했다. 하지만 이전 정부의 소비 지향적 성장전략이 주택가격 거품에 기초한 가계 차입에 의해 이뤄져 위기의 단초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글로벌 불균형을 키우는 주 요인이라는 판단 아래 수출주도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사태가 발생한 상황에서는 소비의존도가 가계의 지출여력 감소 등에 기인해 낮아질 수밖에 없어, 과도기에는 수출이 어느 정도 받쳐줄 필요가 있었다. 대외적으로도 당면한 쌍둥이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출 주도를 통해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는 것이 우선적인 정책수순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수출주도 정책에 아무리 공감대가 형성된다고 하더라도 중국, 한국 등 그동안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을 추진해온 아시아 수출국들이 이를 수용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아시아 국가들이 종전의 성장전략인 수출지향적 정책을 고집할 경우 미국의 수출주도 정책과 맞물려 통상마찰과 환율전쟁이 벌어질 게 불보듯 명확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민간소비 비중이 낮은 신흥국들은 금융위기를 계기로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내수확대 정책이 불가피하다고 인식하고 있어, 미국의 수출주도 정책이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됐다. 대표적으로 중국은 내수 중심의 경제로 전환하기 위해 소득격차 축소, 사회보장 확충, 서비스산업 비중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수출진흥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자 작년 9월부터 오바마 정부는 단순히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을 우선하는 정책으로 바꾸었다. 특히 리쇼어링 정책이 주목된다. 리쇼어링이란 아웃소싱의 반대 개념으로, 해외에 나가 있는 미국 기업들을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등을 통해 불러들이는 정책을 말한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공급망 관리 전문가인 데이비드 심치레비 메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각각 37%, 33%가 ‘미국으로의 U턴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바마 정부가 집권 2기를 맞아 U턴 기업에 대한 각종 지원을 더 강화할 방침임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리쇼어링은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바마 정부의 리쇼어링 정책은 세계화를 놓고 벌어지는 ‘위대한 발산(great divergence)’과 ‘위대한 수렴(great convergence)’ 간 논쟁을 가열시킬 우려가 높다. ‘위대한 발산’이란 세계화가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경제력 격차를 더 확대시켰다는 캘리포니아주립대 어바인캠퍼스의 포메란츠 교수가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해 오히려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가 반박한 것이 ‘위대한 수렴’이다.
출범 이후 오바마 정부가 추진한 3단계 부양책으로 미국 경제가 위기 이후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온 ‘트라이펙터(trifecta)’ 현상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정국에서 트라이펙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경기선행과 동행, 후행지표가 동시에 부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경제는 위기 이후 2009년 2분기를 저점으로 회복국면에 진입하긴 했지만 경기선행과 동행, 후행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서로 엇갈려 경기회복에 확신을 갖지 못하게 했다. 아직까지 월별로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경기선행과 동행, 후행지수가 동시에 고개를 들면서 갈수록 개선되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미국 경제의 앞날과 관련해 트라이펙터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신용등급이 강등된 작년 8월 이후 미국 경제를 보는 시각은 ‘누들 볼 효과(noodle bowl effect)’라고 불리울 만큼 크게 흐트러졌다. 낙관론에는 ‘소프트 패치’와 ‘라지 패치’, 비관론에는 ‘더블 딥’과 ‘퍼펙트 스톰’, 물가와 관련해 ‘스태그플레이션’과 ‘슬럼플레이션’ 등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트라이펙터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이런 다양한 시각들이 이제는 가닥이 잡힌다는 의미다. 올해 3분기 성장률(잠정치)이 2.7%로 2분기(1.4%)에 비해 크게 상향 조정됐다. 지속 가능한 경기회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미국 국민들의 순자산도 올해 3분기에는 64조7700억달러로 위기 직전인 2007년 이후 최대 규모로 늘어났다.
증시 입장에서도 미국 경제가 트라이펙터에서 벗어나는 것은 낙관론, 특히 요즘 월가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리쇼어링 랠리’에 대한 기대를 높일 수 있다. 세계적인 투자은행(IB)들은 내년에는 채권보다 주식이 보다 높은 수익을 낼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에도 예상되는 악재가 많지만 미국 경제와 증시가 버팀목 역할을 할 것으로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