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구매의 90%는 협상력이더라고요.”

이제 갓 입사한 지 10개월밖에 안된 새내기 신입사원의 입에서 나온 말에 놀랐다. 예사롭지 않았다. SPC그룹 글로벌구매본부에서 유럽·미주 원재료 수입을 맡고 있는 최유진 씨(성균관대 불문과 졸·여·26). 그는 여린 겉모습을 지녔지만 일에 있어선 확신을 갖고 있었다. “지난달 추석을 앞두고 유럽서 온 마요네즈에 문제가 생겼어요. 부산항 물류창고에 도착한, 터지고 찌그러진 제품 사진을 찍어 증거를 남겨둘 것을 현장 직원에게 부탁하고 급히 내려갔지요. 아직까지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상 중입니다.”

지난주 목요일 오후 서울 양재역 인근의 SPC그룹 본사를 찾았다. 역삼동과 신대방동 등에 흩어져 있던 계열사들이 2주 전 한 곳으로 모였다. 새로운 사옥으로 이사하다 보니 분주한 모습이었다. 주력 계열사인 파리크라상과 삼립식품이 이미 이사를 마쳤고 연내 비알코리아 등도 입주할 예정이란다.

새 건물 입주와 신입사원 채용이 맞물려 한창 바쁜 김대순 그룹 인사팀장이 최씨와 함께 기자를 맞았다. 오후 7시쯤 인터뷰를 마친 최씨는 한국 시간보다 8시간 빠른 프랑스 원재료업체와 마무리 협상을 위해 다시 사무실로 올라갔다. 야근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그의 뒷모습은 경쾌해 보였다.

◆“최유진이라면 마음이 놓인다”

“저는 정직한 사람입니다. 그것은 기본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기본이 돼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을 할 때 실수가 있더라도 솔직히 말하고 공개할 것입니다. 왜냐면 그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SPC그룹 입사 최종면접.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 임원의 말에 최씨는 당당하게 ‘정직’을 이야기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가장 강조하신 말씀은 ‘거짓말은 절대 하지 마라. 어디서든 기본이 중요하다’였다. 부모님의 말씀이 몸에 배어 삶의 좌우명이 된 것이다.

‘기본과 정직’의 중요성은 대학생활 중 통역봉사를 할 때 깨달았다. 외국어에 재능을 보인 그는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지만 일어도 곧잘해 통역을 자청하곤 했다. 대학 2학년 여름방학. 평소 좋아했던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두 개의 영화제를 잇따라 찾아갔다. 영화가 좋아서 참여한 봉사였지만 마침 일본어 실력을 인

받아 ‘시네마디지털서울’ 일본인 심사위원의 통역가로서 활동했다.

“심사위원이셨던 도모야마 씨 통역가로서 같이 다니다 보니 그가 영어자막을 읽지 못해 심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알았어요. 특별히 제가 안해도 되는 일이었지만 매일 영화 세 편을 함께 보면서 영어를 일어로 통역해드렸어요. 마지막날 그분이 ‘역시 최유진이라면 마음이 놓인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친 경험은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데 큰 도움이 됐다. 3학년 2학기에 일본 교환학생으로 떠났다. 그는 도쿄의 5개 대학 연합동아리인 ‘비틀스역사연구회’에서 밴드활동을 하면서 키보드를 쳤다. 거기서 드럼도 배웠다. 그러면서 일본 대학생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외국어를 공부하니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온 뒤 1주일 만에 JLPT(일본어능력시험) 1급에 합격할 수 있었죠. 성격도 적극적으로 바뀐 것 같아요. 이력서 한 줄을 쓰기 위해 한 활동이

아닌데도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길이 보였어요.”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최씨는 대학시절 학교 출판부에서 4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로 일하며 실전업무에 대한 감각과 조직생활을 익혔다. “소매점 재고와 매출을 관리하며 항상 오차 없는 데이터를 보고했고, 연말에 달력을 만들며 업무량이 많을 때는 야근을 자처하기도 했습니다. 이 경험이 지금의 구매팀 업무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또 학교도서관 안내데스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서비스 정신을 배웠다. “말투나 인상이 조금 차가워 보이는 편이라 걱정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어느날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 고객을 정성껏 도와드려 칭찬을 받았죠. 이 일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고객과 만나면 미소를 습관화했고 이제는 첫인상이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요.” 이런 일들을 통해 최씨는 자신감을 얻었다.

프랑스어와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가 취업준비를 하면서 마음에 둔 것은 ‘글로벌 직무’였다. “다른 몇몇 기업에 최종합격했지만 SPC그룹을 택한 것은 글로벌 업무를 하면서 제가 가장 잘하는 외국어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야근도 잦지만 그래도 신나게 일할 수 있어 너무 좋아요.”

그는 SPC그룹 입사 준비생을 위한 팁도 귀띔해 줬다. “먼저 평소의 관심이 중요해요. SPC그룹 홈페이지나 뉴스를 보면서 회사의 트렌드를 파악해 두세요. 가령, 중국에서 파리바게뜨 100호점을 열었다든지, 매장 아르바이트 대학생들에게 등록금 반액지원 등의 뉴스를 보면서 회사가 지향하는 철학이 뭔지를 정리해 둘 필요가 있어요. 또한 SPC그룹에서 운영하는 브랜드 매장을 찾아 손님과 직원의 입장에서 서비스를 생각해 보는 것도 면접 때 유용하리라 생각됩니다.”

국내 제과제빵업계 1위인 SPC그룹에는 미각·후각을 평가하는 관능테스트가 있다. 최씨는 많은 지원자들이 궁금해하는 관능테스트에 대한 접근법도 언급했다. “식품업체이기에 기본적인 맛과 향에 대한 감각을 알아보는 것은 당연하겠죠. 인터넷에 족보가 많이 떠돌았지만 저는 제가 가진 입맛과 후각을 믿었습니다. 시험날 무색무취의 시료가 담긴 조그만 컵을 주고는 각각 다섯 가지의 맛과 향기를 구별해 적으라고 했어요.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고요.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동남아에 이어 남미와 유럽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SPC그룹에서 최씨가 이루고 싶은 것은 뭘까. “빵 하나로 국내 최고가 된 SPC그룹은 충분히 글로벌 무대에서도 최고가 될 수 있으리라 자부합니다. 글로벌 업무를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현장에서 저도 직접 발로 뛰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원재료 구매뿐 아니라 영업에서도 최유진의 이름을 SPC그룹의 해외 파트너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공태윤 기자·이도희 한경잡앤스토리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