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장 하면 떠오르는 곳은 대학로나 홍대다. 같은 젊음의 거리지만 강남은 소극장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문화 코드도 대학로나 홍대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런 강남에서 연극전용 소극장을 열고 강남역을 대표하는 문화명소가 되겠다고 도전장을 내민 이가 있다. 소극장 ‘강남아트홀’의 남상호 대표(41)가 그 주인공이다.

남 대표는 2010년 8월 강남아트홀을 개관하고 코믹연극 ‘배꼽’과 초청작 ‘수상한 흥신소’를 비롯해 여러 연극을 공연해왔다.

대학로에서 연출자로 활약하던 남 대표는 KBS 공채 15기 개그맨 출신이다. 사업가 인생을 걷다가 개그맨의 길을 걷게 됐고 수많은 실패 끝에 다시 코믹연극 연출자로 돌아와 강남역에 소극장을 내기까지 했다.

사업가에서 KBS 공채 개그맨으로 변신했지만 고난 시작돼

남 대표는 1998년 강남역에서 칵테일바를 열고 수 억원의 돈을 벌었다. 당시 남 대표의 나이는 27세였다. 20대 후반에 사업에 성공하자 남 대표는 꿈과 보람을 찾아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은 자신을 발견했다. 친분이 있던 개그콘서트 ‘황마담’ 황승환의 조언으로 개그맨에 도전하게 된다.

남 대표가 개그맨에 도전할 당시에는 개그콘서트가 큰 인기를 끌면서 KBS 공채개그맨 시험이 대회 형식으로 열렸다. 1000명이 도전한 대회에서 전체 2위에 입상한 남 대표는 KBS 공채 15기 개그맨으로 2000년 방송에 데뷔했다.

동기로는 옥동자로 유명한 정종철, 가수 노이즈 출신 홍종호 등이 있다.

남들과 달리 연습생 생활을 거치지 않고 단박에 방송에 데뷔하게 된 것은 대단한 성공이다. 하지만 남 대표는 이에 대해 “남처럼 힘든 연습생생활을 거쳤다면 방송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이 쉽게 얻으면 그게 얼마나 귀한지 모른다. 남들처럼 어렵게 얻으면 이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서 열심히 할 텐데 그때는 소중한 줄 몰랐다”고 말했다.

방송제작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전의 기회들을 몇 차례 놓치자 어느새 남 대표는 방송의 바깥으로 밀려나게 됐다.

게다가 방송에 데뷔한 이후에도 사업을 계속했지만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모두 잘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결국 가게를 처분하고 방송에 매진하기 시작했지만 방송은 당장 돈이 되는 일이 아니었고, 남 대표는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결국 강남역에 이전보다 더 크게 칵테일바를 열었지만 이번에는 사업이 크게 실패했다. 가게를 크게 하면 위험이 커진다는 생각을 못한 터였다. 수억원의 손실을 봤지만 아직 벌어놓은 돈이 남아있던 남 대표는 주식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911테러가 난 직후여서 주가가 크게 떨어져 있던 시기였다. 중요한 기회였던 셈인데, 투자한 주식이 반토막나면서 또다시 손실을 봤다.

경제적 위기에 봉착한 남 대표는 재기를 꿈꾸며 2005년 대학로 공개무대로 진출했다. ‘키득키득 아트홀’을 비롯한 소극장에서 개그공연을 하며 연기와 개그의 실력을 키웠다.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공연을 연출하는 재능을 발견하고 배우 겸 연출자의 길을 걷게 됐다.

공연장 만들고 싶던 돈 사기로 날려

KBS 공채 개그맨 선발대회에서 2위를 한 남 대표의 감각은 연출자의 길을 걸으면서 빛을 발했다. 방송에서 성공하지 못한 꿈을 대학로 소극장에서 개그공연을 하며 이룬 것이다.
개그맨이나 개그맨 지망생들이 함께 모인 공연팀을 이끌고 하던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개그맨 지망생들에게는 개그를 가르치고 공개무대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남 대표는 자신의 공연장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국의 공연 시스템은 연출자가 극장 측에 맞춰서 공연을 하게 된다. 남 대표 역시 기획팀의 간섭이나 무리한 일정에 시달렸다. 공연시간을 과도할 정도로 타이트하게 잡는 문제, 매표 직원이 없다며 공연팀에게 매표를 해달라고 요구한다거나 조명 등 스텝 역할을 요구하는 등 문제가 많았다.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연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남 대표는 공연을 하며 모은 돈을 불리기 위해 주식에 다시 손을 댔다.

이번에는 잘 알던 기업체 대표의 조언을 받아 그 회사 주식을 샀다. 하지만 형님처럼 친하게 지내던 기업체 대표는 남 대표가 자기회사 주식을 사자 자신이 갖고 있던 주식을 모두 팔고 잠적했다.

결국 회사는 상장폐지되고 남 대표의 주식은 휴지조각이 됐다. 자신의 공연장을 갖는다는 꿈도 멀어졌다.

이런 상황에 내몰렸으면서도 남 대표는 긍정적인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자기 공연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성공할 수 있는 전망도 갖고 있었다.

이때 대학로는 수많은 소극장과 개그공연으로 이미 포화상태였다. 하지만 젊은 층이 많이 찾고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은 소극장과 개그공연의 불모지였다. 남 대표는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2010년 강남아트홀을 열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10여명 오던 공연장 이제 주말은 거의 매진

처음 공연장을 열었을 때는 한 공연에 관객이 10명에서 15명 들어오면 많이 들어오는 편이었다.

하지만 공연의 질이 워낙 좋았다. 억지스런 상황극이나 무리한 개그 대신 영화 패러디를 비롯해 연기 중심의 개그로 승부를 보자는 남 대표의 전략이 먹혀들면서 점점 입소문도 났고, 인터넷에서 호의적인 평가도 나오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제 강남아트홀은 평일에도 50~60여명의 관객이 찾아오고 주말에는 거의 매진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인근에 있는 삼성 등 대기업에서 단체관람을 오기도 한다. 한번에 60명에서 100명씩 찾아오는 단체관람 손님들은 남 대표에게 큰 힘이 됐다.

남 대표는 아직 더 알려지고 발전해야 한다면서도 “강남역을 대표하는 문화명소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들어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강남아트홀은 시작한 지 2년이 됐지만 그새 공연을 함께 하던 개그맨 지망생들 중에 방송사 공채 개그맨을 배출하기도 했다. KBS 개그콘서트 ‘헬스걸’로 유명한 이희경이 대표적이다.

남 대표는 강남 일대에 소극장이 거의 없는 이유에 대해 “비싼 임대료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임대료와 권리금이 너무 비싸 문화예술이 승부를 볼 수 있는 환경은 안 돼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하지만 강남 일대의 젊은 층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소극장이 보다 많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젊은이들이 가장 유흥을 즐기는 곳이 강남역입니다. 대학로에 있을 때 젊은이들이 많이 보러왔지만 지역적인 한계를 느꼈어요. 강남에 사는 사람이 대학로까지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은 마음먹지 않고서는 가기 힘듭니다. 문화는 젊은이들이 늘 만끽하고 즐겨야 하는 것인데 하나의 이벤트처럼 돼 버렸어요. 기성세대들이 반성해야 할 문제입니다. 한 곳에 특화된 지역을 조성하는 것은 물론 좋지만 다른 곳에서 시도하는 사람이 나와야 널리 확산되고 쉽게 즐길 수 있어요.”

한경닷컴 스카이데일리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