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시민들에게 궁궐 전각을 적극 개방,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 5월부터 경복궁 함화당과 창덕궁 가정당 등 전각 두 곳을 회의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기업이나 단체에 개방하고 있다. 창경궁 통명전에서도 지난 8월부터 한 달간 매주 수요일마다 ‘인문학 강좌’가 열렸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궁궐 전각 개방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많았다. 2000년대 중반 창덕궁에서 세계신문협회, 국제철강협회 등 국제행사 만찬이 잇따라 열렸을 때, 단지 궁궐에서 민간협회가 주최하는 만찬이 열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전문가들은 한국 목조 문화재의 특성상 사람의 손때가 묻어야 더 잘 보존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문화재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본래 역사적 취지를 제대로 살린 행사라면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하지만 문화재 ‘활용’ 정도가 지나쳐 ‘훼손’으로 이어지면 사정은 달라진다. 본지가 지난 4일자에 보도한 ‘커피숍으로 전락한 창덕궁 빈청(賓廳)’이 대표적 사례다. 조선시대 대신들의 회의 공간으로 쓰였던 빈청이 일제의 궁궐 훼손정책에 따라 차고로 전락한 데 이어 2010년엔 카페로 용도 변경된 것이다.
본지 보도 이후 5일 열린 문화재청의 국정감사에선 창덕궁 빈청 훼손을 비판하는 의원들의 지적이 잇따랐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릉 중 제16대 왕 인조가 묻혀 있는 파주 장릉의 재실(齋室·제례 준비 공간)이 직원 사무공간 및 창고로 쓰이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문화재 활용은 보존에 지장이 없고, 역사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문화재가 지닌 가치를 외면한 채 현대적 활용에만 몰두하는 건 훼손에 가깝다.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