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를 보니 새로 지은 서울시청 건물이 뭔가 시끌시끌,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대충 이해한 바로는 처음에 설계를 한 건축가가 중간에 배제되고 시공사가 통째로 맡아서 뚝딱(?) 끝내버리는 바람에 원래 건축가의 의도가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쓰나미 같다는 둥, 메뚜기 눈알 같다는 둥, 솔직히 건축적 안목이 허술한 나로서는 미적인 완성도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지만 방송 중 건축가 승효상 씨의 인터뷰 내용은 정말 가슴에 와 닿았다.

“건축의 가장 마지막 재료는 ‘시간’입니다. 이제 우리 시민들이 이 건물을 잘 써서 세월의 가치를 입혀 진짜 우리 것으로 만드는 일만 남았습니다”

좀 냉정하긴 해도 타당한 결론이다. 다 끝난 일에 이러쿵저러쿵 험담을 해댄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사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낯설고 불편하다. 기존의 방식도 그러한데 시도가 지나친 것들은 오죽할까. 우리 가족이 양평에 집을 지었을 때도 그랬다. 건축가의 의도를 높이 사서 검은 벽돌로 크고 작은 상자 모양의 6개 동을 지어 놓으니 좋게 보면 미술관 같고 아니게 보면 벙커 같고…. ‘흠, 이게 집이긴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 꼴을 갖추려면 3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제 그럭저럭 자작나무 숲도 자리를 잡고, 낮은 돌담 아래로 야생화 씨가 날아와 꽃들을 피우고, 벽돌담에 담쟁이가 덮히고, 무엇보다 웃고, 울고, 지지고 볶는 세 가족의 이야기들이 구석구석 담겨지니 이제 딱딱한 ‘건물’이 아니라 느슨하고 따스한 ‘집’이 되어가고 있다.

‘아~ 이것이 세월의 힘이구나’ 실감이 난다.

오래된 것들은 아름답다. 고작(?) 플라스틱으로 만든 전화기, 스탠드, 냄비 같은 것들조차 ‘엔틱’이라는 이름으로 값비싸게 거래되는 건 버려지지 않고, 망가뜨려지지 않고 견뎌온 세월에 대한 대가다. 오래된 친구나 오래된 부부들이 아름다워보이는 건 ‘관계’라는 가치를 쉽게 포기하지 않고 가꾸어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재료들이 있다. 나무, 돌, 철 등과 같은 물질적인 재료에서부터 마음, 아이디어, 재능과 같은 정신적인 재료 등등. 그런데 우리는 종종 ‘시간’이라는 재료를 깜빡하곤 한다. ‘시간’이란 재료는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하고 돈으로 살 수도 없다. 솔직히 나도 새로운 것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하고, 또 금방 싫증내고는 다른 것을 두리번거리는 부류의 인간이라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하는 반성도 된다.

그래서 요즘엔 가능한 한 유행을 타지 않는 제대로 된, ‘진짜’를 만나려고 노력한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래야 쉽게 버리지 않고, 쉽게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물론 그러려면 제대로 된 안목을 가져야 하고, 그러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휴~ 멋지게, 제대로, 잘 사는 건 참 어렵다.

김혜경 < 이노션월드와이드 전무 hykim@innoce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