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절주(節酒)
고대 중국에 의적(儀狄)이란 여인이 누룩으로 술을 빚어 하(夏)나라 우(禹)왕에게 바쳤다. 우왕은 그 맛과 향에 끌려 거듭 마시다 대취해 잠이 들고 말았다. 깨어난 후 “조심하지 않으면 후세에 나라를 망치는 자가 반드시 나올 것”이라며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전국책》에 실린 일화다. 실제로 하나라 마지막 왕 걸(桀)은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고사를 남기고 나라를 망쳤다. ‘고기는 산처럼 쌓이고, 포는 숲처럼 걸려 있었으며, 술로 만든 못에는 배를 띄울 수가 있었고….’ (십팔사략).

수천년 전부터 이렇게 경계했는데도 과도한 음주로 눈총받는 주당(酒黨)들은 여전히 많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은 외교무대에서까지 주사(酒邪)를 부렸다. 독일 방문 환영식에서 춤추고 노래한 것도 모자라 군악대 지휘를 했는가 하면 숟가락으로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의 머리를 두드리기도 했다. 1994년 미국 방문 후 러시아로 돌아가는 길에는 아일랜드 총리와 만날 예정이었지만 만취해 곯아떨어지는 바람에 정상회담을 펑크냈다. 1991년 8월 탱크 위에 올라가 열변을 토하는 용기를 냈던 것은 보드카 덕분이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주성(酒聖)으로 통하던 시인 조지훈은 술꾼의 급을 18단계로 나누었다. 맨 아래인 9급은 술을 못하지는 않으나 안 마시는 불주(不酒), 8급은 마시긴 하되 겁내는 외주(畏酒)다. 7단 낙주(樂酒)에 이르면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고, 8단 관주(關酒)는 술을 보고 즐거워할 뿐 이미 마실 수 없는 단계다. 맨 위인 9단은 술로 인해 다른 세상으로 떠나게 된 폐주(廢酒)라 했다. 조지훈은 엄청난 주량을 뽐냈던 후배 시인 김관식에게 겨우 3단을 줬다. 고약한 술버릇이 주도에 어긋난다고 봤던 거다.

삼성이 벌주, 원샷, 사발주 등을 퇴출하는 절주(節酒)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술로 인해 사고가 생기면 당사자뿐 아니라 술자리를 주도한 부서장에게까지 책임을 묻고, 신입 경력 사원이나 임원 교육에도 절주 강의를 넣는다고 한다. 술 못 마시면 출세 못한다는 말이 사라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한 자리에서 남자 소주 7잔, 여자 소주 5잔’을 고위험 음주의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술 소비량 3위, 독주 소비량 1위다. 미국 경제전문 CNBC 방송의 ‘술을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 조사에서도 세계 11위로 절대 강자다. 음주로 인한 사회비용이 의료비 2조원, 생산성 손실 6조원, 조기 사망 3조원 등 연 17조원을 넘는다는 분석도 있다. 술 권하는 사회에서 삼성의 실험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