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중반까지 '황금기 20년'…어떻게 살것인가 '공감' 필수
혼자라면 서예·사진·독서·번역…친구 사귀며 골프·등산·바둑…
경륜 살려 재능기부 큰 보람…손주 봐주기는 '약속한 범위'만
김 전 사장은 은퇴 후 삶에서 ‘돈 외의 것’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재무적으로 은퇴를 준비하는 것도 간과해선 안 되지만, 삶의 질을 높이는 ‘즐거움’은 돈이 주는 것이 아니다. 부부 관계, 취미생활, 종교생활, 봉사활동, 자녀와의 관계 등이야말로 은퇴 후 삶의 그림을 풍요롭게 하는 요소들이다. 노후 준비는 단순한 자산 축적이 아니라 종합적인 생애 설계이기 때문이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등의 도움을 얻어 ‘돈 문제를 제외한’ 노후 준비 요령을 알아봤다.
○부부가 같이 준비해야
예비부부에게 사람들은 ‘결혼 준비가 잘돼 가느냐’고 묻는다. 식장은 잡았는지, 비용은 어떻게 구하는지, 신혼집은 마련했는지, 세간은 어떻게 장만할지, 자녀계획은 어떤지 등을 두루 묻는 질문이다. 예비부부는 미래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운다는 증거다. 반면 은퇴 후에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해 결혼할 때처럼 차분히 계획을 세우는 이들은 의외로 적다. 대개 은퇴 후에야 ‘어떻게 할까’하고 고민을 시작한다.
윤성은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행복한 은퇴생활은 부부 두 사람이 그리는 노후가 동상이몽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은퇴 후 삶에서 각자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은퇴 후에도 다른 일을 계속하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평온한 삶을 원하는지, 도시를 원하는지 전원생활을 원하는지 등이다.
노후 생활에 대한 계획과 의사 결정이 구체적으로 이뤄지면 그에 맞게 재무목표를 세우고 저축도 할 수 있다. 윤 연구원은 “부부의 재무의사결정 유형별로 노후 준비 수준을 분석한 결과 부부가 함께 재무 의사 결정을 내리는 집단(부부공동형)이 남편주도형보다 더 낮은 소득을 갖고 있더라도 은퇴자금 저축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부부공동의 준비는 건강과 장수에도 효과적이다. 가족치료학자인 존 가트맨 박사는 “매일 혼자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것보다 부부가 함께 하루 20분이라도 좋은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즐거움’을 찾아라
학교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시작해 은퇴하기까지 쉼 없이 달려온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 은퇴는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다. 집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는데 딱히 할 일은 없고 TV만 보고 있다면 아내의 잔소리를 듣기에 딱 좋다. 직장 동료와의 커뮤니티가 단절되고 인간관계도 좁아진다. 스스로 왠지 위축되는 기분도 들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은퇴 후 생활의 행복도를 결정하는 또 다른 요인은 취미와 같은 여가생활이다. 김윤환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은퇴하고 나면 대략 하루 11시간의 자유가 주어진다”며 “이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 곧 은퇴생활을 잘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9년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통계청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가생활에 만족한다는 의견은 17.4%에 불과했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나 건강·체력상의 이유로 여가생활이 불만족스럽다는 답변이 86%나 됐다. 동호회를 이용하거나 주변 친구들과 함께 활동적인 여가를 즐기는 비중은 16.8%뿐이었다.
은퇴 직후부터 70대 중반까지를 ‘활동기’로 표현한다. 이 시기는 달리 보면 인생의 황금기다. 그간 못했던 일들을 마음껏 찾아내보자. 어떤 여가생활이 좋은지는 그야말로 제각각이다. 크게 보면 혼자 하는 여가생활과 타인과 함께하는 여가생활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홀로 할 수 있는 여가생활은 무수히 많다. 그림을 그리거나 서예를 즐기는 것, 악기를 배우는 것, 사진을 찍는 것, 명상하는 것, 스포츠나 영화를 관람하는 것 등이다. 인근 대학교의 사회교육원이나 주민센터 등 지역 시설에서 가르치는 각종 강좌를 섭렵하는 것도 즐거움이 될 수 있다. 도서관을 찾아가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마음껏 읽거나, 관심 있었던 분야의 외국책을 번역해 사회에 기여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타인과 함께하는 여가생활은 골프를 비롯해 배드민턴 등산 승마 등 스포츠성 활동이 많다. 체력이 따라준다면 나이를 잊고 과감한 스포츠에 도전할 수도 있다. 체력이 부담스럽다면 바둑 등 조용한 취미도 얼마든지 있다. 꼭 바깥으로 돌아야만 활기찬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다. 부부가 함께 댄스스포츠를 즐기거나 함께 등산을 하는 것으로 운동과 부부관계 취미생활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
○봉사활동에서 삶의 의미 찾을 수도
보다 처지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봉사활동에서 삶의 의미와 또 다른 통찰을 얻는 은퇴자들도 적지 않다. 베푸는 삶을 통해 직장이 아닌 곳에서도 얼마든지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 활력을 찾을 수 있다. 그간 쌓인 지식과 기술 지혜를 인생의 선배로서 전수하는 것은 보람있는 일이다.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보는 데도 제격이다.
봉사활동을 하고자 하는데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면 지역 주민센터나 각종 사회단체에 문의해 볼 수 있다. 종교단체를 통해 봉사활동을 하는 곳을 알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등의 기구를 이용해 해외에서 자기 재능을 기부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아시아·남미·아프리카 등에서 교육자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과학 수학 등을 영어로 가르칠 수 있다면 좋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의사나 IT기술자 등 전문지식이 있는 경우라면 더욱 환영받을 것이다.
○황혼육아는 ‘원칙’ 지켜야
은퇴 후 삶을 마음껏 누리려는 은퇴자들의 발목을 잡는 문제 중 하나가 갑자기 떠맡게 된 손자 손녀다. 맞벌이를 하는 자녀의 사정도 십분 이해하지만, 무작정 휘둘리기만 하면 서로 불만이 쌓이고 갈등이 생겨 즐거운 은퇴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다.
김미영 서울가정문제상담소 소장은 “부모의 몫인 육아를 주말이나 휴일까지 완전히 떠맡아 버리면 부모가 육아의 어려움을 모르게 될 수 있다”며 육아를 반드시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육아과정에서 아이가 다치거나 했다 해서 누군가에게 책임을 따져 묻기보다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이의 습관형성이나 교육 문제에 대해 조부모 세대와 부모 세대의 입장은 다르게 마련이다. 충분한 대화와 약속이 왕도다. 서로 너무 ‘참아주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생각이 다른 것에 대해 빨리 이야기하고 또 같은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