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첸먼(前門)의 작은 약방이었던 동인당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청심환이다. 각 지방의 비방으로 전해지던 청심환을 처음으로 상업화하면서 ‘명약을 만드는 약방’으로 공인됐다. 청나라 황제 8명이 동인당에서만 약을 지었을 정도로 성가가 높았다. 덩샤오핑도 동인당에서 만든 간장약인 편자환을 항상 곁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술과 담배를 즐기던 그가 93세까지 장수한 것은 편자환 덕이란 이야기도 있다. 2003년 사스가 발생했을 때는 동인당이 만든 치료제 반란건을 사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기도 했다.
동인당을 창업한 사람은 저장성 출신의 낙현양이라는 사람이다. 의사집안 출신으로 이곳 저곳에서 약재를 팔던 그가 베이징 첸먼에 동인당이라는 간판을 내건 것은 1669년이다. 당시 그는 약방 벽면에 ‘비록 사람들은 못 보지만 하늘은 그 심혈을 안다 (修合無人見,存心有天知)’라는 글귀를 써붙였다. 정성과 재료값을 아껴서는 좋은 약을 만들 수 없다는 그의 지론이 담긴 말이다. 동인당은 금세 이름이 알려져 약을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1723년 황실약방으로 지정됐고 이후 188년간 황제의 약을 책임졌다.
동인당은 1978년 완전 국유화된 뒤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당시 밀려들기 시작한 서양약품에 맞서기 위해 현대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처방이 분명하고 약효가 빠른 서양의약품을 접한 뒤 중국민들은 경험에만 의존하고 제조과정이 약방마다 다른 전통약품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동인당은 제조기법을 표준화하고 사용약재를 정량화해 공개했다. 전국 각 지역의 가격을 통제하기도 했다. 이런 동인당의 고군분투는 놀라운 것이었다. 작년 163억위안의 매출에 13억위안의 순이익을 냈다. 15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동인당도 고민이 많다. 전통 생약재는 구매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젊은 소비자들은 간편한 서양약품을 훨씬 선호한다. 기업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의료사고를 일으키는 허접한 짝퉁제품도 골치다. 그래서인지 올해부터는 건강보조제와 화장품 분야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병을 고치는 게 아니라 예쁘게 치장하는 것이 동인당의 정신에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베이징 첸먼의 동인당 약방에 진맥을 해주는 의사와 피부미용사가 함께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을 조만간 보게 될 것 같다.
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