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세계에는 경쟁자들 사이에서 현재의 자리를 지키려면 쉬지 않고 뛰어야 하고, 앞서길 원한다면 죽을 힘을 다해 달려야 한다. 안목 있는 최고경영자치고 TQM(Total Quality Management)이나 리엔지니어링, 핵심역량 경영 등 시대에 따라 새롭게 개발된 혁신기법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런 기법들은 조직을 단단히 아우르는 동시에, 경영자 입장에서 여러모로 요긴한 신무기다. 리더로서 변화 추구 자체가 갖는 혁신적 이미지 구축과 혁신 경영이념 설정을 통한 리더십의 강화도 대부분의 경영자들이 간절히 원하는 대목일 것이다.


#창의적 제도보다 체질을 갖춰야

이론가들은 경영자들의 수요에 편승해 예나 지금이나 신(新)경영기법을 목소리 높여 설파하곤 한다. 자신들이 창안한 신 경영기법을 종교적 신념처럼 과장되게 선전한다. 기업인과 독자들을 향한 설득 커뮤니케이션은 매우 효과적이었고, 이론가들은 스스로 비즈니스 전도사가 되어 영향력을 거침없이 넓혀나갔다. 문제는 훌륭하게 포장된 신 경영기법을 조직에 도입했다고 모든 기업이 승자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신 경영기법은 나름대로 처방해주는 전략목표가 있긴 하지만, 최선의 전략 실행을 위해서는 시시각각 현장에서 요구하는 여러 판단과 잡다한 의사결정을 피할 수 없다. 이론가들의 책과 강연에서 특정 기업만이 가진 문제적 상황을 충족시킬 방법이 있을 리 없다. 정답은 힘이 들더라도 혼자 문제풀이의 실마리를 찾아 해결의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기업 역시 해결 할 과제가 있다면 스스로의 해법을 찾는 성공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창의적 제도만 옮겨놓은 조직이 아닌, 창의적 체질을 갖춘 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GE와 함께 기업 혁신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지는 도요타. 이 회사는 세계 자동차산업의 격한 부침 속에서도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획득한 독특한 노하우로 성공을 거듭했고, 세계의 많은 기업과 연구자들에게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개했다. 최근 글로벌 리콜사태로 인한 도요타의 추락에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지만, 도요타는 분명 한 시대를 이끌었던 기업이다. 도요타는 자기들만의 변화와 혁신을 만들었고, 지난 수십 년간 세계 기업들의 교과서가 됐다. JIT(Just-In Time), 안돈, 포카요케 등 도요타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용어들이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도요타의 혁신기법은 여러 기업에 전수됐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도요타의 생산방식을 도입, 도요타에 맞설 만큼 성공한 기업은 아직 없다는 점이다. 생산방식을 개선해 일시적인 효과를 거둔 기업은 많았지만, 더 이상 좋아지지는 않았다. 도요타 혁신의 핵심인 ‘구성원 스스로에 의한 자주적인 개선노력’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도요타 혁신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시바다 마사하루와 가네다 히데하루는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도요타의 생산방식은 과거 50년에 걸친 노력의 대가로 자연스럽게 키워진 것이다. 한 번도 문서화된 적이 없으며, 직원조차 그것에 관해 논리 정연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도요타는 특별히 지시하지 않아도 사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며 성과를 올리려는 힘이 끝없이 분출되고 있다.”

#GE·도요타 생산방식은 스캣덩어리

도요타 생산방식의 창시자 오노 다이이치는 “인간의 뇌는 곤란을 느끼지 않는 한 지혜를 짜내지 않는다” 고 말했다. 숨어있는 문제를 미루지 않고 당장 그 자리에서 드러내 현장에 혼란을 일으키고, 어떻게 해서든 지혜를 짜내 그것을 해결하고자 모든 사람들이 골머리를 앓는 상황으로 내모는 일. 그것만이 구성원을 가장 창의적으로 만든다고 그는 확신했다. 결함이 발생하면 가동률이 떨어지더라도 생산라인을 멈추고, 신속하게 고친 뒤 라인을 다시 가동시키는 도요타의 개선방식이 그랬다.

GE의 워크아웃프로그램이나 도요타 생산방식은 현장에서 필요에 의해 탄생한 스캣 덩어리다. 현장 상황을 분석하고,적용과정에서 경험하고 학습한 결과, 개선 방법을 창안하는 과정을 반복해 얻어진 방식이다. 한 단계 한 단계 진전되는 과정에서 신속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요구되고, 창조된다. GE나 도요타의 혁신기법은 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만들어져 책으로 정리된 것이다.

GE의 잭 웰치, 도요타의 조 후지오, 월마트의 리 스콧 주니어 같은 경영자들은 자기 기업의 성공과 실패의 역사, 강점과 약점, 보유한 유형자산과 인적 자산의 양질적 수준을 누구보다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들은 ‘일을 되도록 만드는’ 명수들이었다. 그들은 주어진 시점과 상황에서 인력, 재원, 기술 등을 얼마나 사용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그것들을 더 많이 모을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지금 사용할 수 없는 것들을 아쉬워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당장 손 안에 있는 것만을 최대한 사용해서 최선의 해법을 찾는 사람들이었다. 마당에 쌓여 있는 나무토막만으로 그럴듯한 가구를 뚝딱 만들어내는 시골목수처럼 그들은 스캣의 달인들이었다.

비전이 있는 최고경영자는 조직을 어떻게 긴장시키는지 잘 알고 있다. 능력있는 경영자는 선언을 앞세우기보다 시스템을 개선하고, 실현 가능한 문제해법을 찾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아붓는다. 그 결과는 오로지 성과로만 평가받는다. 창의적인 경영자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독창적인 상황 타개책을 스스로 이끌어내는 사람들이다. 이론과 사례 연구는 문제점을 짚어줄 수는 있지만, 해답을 주지는 못한다. 자신의 조직이 당면한 문제점은 창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것이 자기만의 새로운 경영혁신기법을 스스로 발견하는 첫 걸음이다.

#스캣 기반 ‘미래 발명적 계획’

피터 드러커는 그의 명저 <단절의 시대>에서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라고 질문하는 대신 “미래를 만들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 과거로부터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하는 일은 부질없는 일이다. 우리 앞에 존재할 것은 우리가 만드는 미래일 뿐이다.

‘미래 만들기’는 ‘미래 발명적 계획’(future-inventive planning)을 의미한다. 이는 과거와 현재의 성찰과 비판을 통해 개인과 조직의 창조적 잠재력을 극대화시킨다. 계획학자 임길진 교수는 그의 저서 <미래를 향한 인간적 계획론>(1995)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미래 만들기는 인간적 가치를 바탕으로 현재의 구속적 조건을 수정하거나 제거하고, 제도적 개조를 통해 발전을 꾀하고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이것은 우리의 창조적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고뇌를 거듭하는 우리나라의 선도 기업들과 정부에 중요한 의미를 제시하는 말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를 만드는 이유를 인문학적 고민에서 찾았다. 그는 “과거에는 사람들이 기술을 따라잡으려 애썼지만, 이제 기술이 사람을 찾아와야 한다”는 철학을 이야기한 미래형 CEO였다.

직관력 있는 경영전략 이론가 캐슬린 에이센하트 스탠퍼드대 교수는 미래 발명적 계획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미래 비전과 사업계획을 갖고, 시장의 변화를 늘 눈여겨보며, 실시간 정보를 더 많이 활용하는 기업일수록 상황 적합적 의사결정(스캣)을 하고 의사결정의 속도도 빠르기 마련이다. 그런 기업은 다른 기업보다 높은 성과를 낸다.”

권업 <계명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