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왕이 한국을 방문하고 싶으면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을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했으면 좋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일본 열도가 흥분하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유감을 표명했고 궁내청 관계자는 “(왕의) 방한은 100년 이상 멀어졌다”고도 말했다. 언론들도 ‘폭언’(산케이) ‘무책임한 언동’(요미우리) ‘품격을 잃었다’(아사히)고 흥분하고 있다. 이를 틈타 2명의 민주당 출신 현직 각료가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는 행사도 치르고 있다.

일본 왕이 패전 후 인간 선언을 한 지 67년이 지났지만 소위 천황 문제만 나오면 일본 열도 전체가 발끈하고 있는 모양새다. ‘왕은 일본국 상징이면서 일본국민 통합의 상징’이라는 일본 헌법 1조 조문의 위력이다. 근대 입헌국가에서 다른 사례를 찾을 수 없다. 왕이 일본 국적을 갖는지에 대한 논란도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이다. 이런 문제가 논란이라는 것 자체가 기이할 뿐이다. 여전히 천황을 현인신(現人神)으로 보는 정교 일치적 신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인의 이런 문화적 특성은 때로 일본 고유의 정신세계로 존중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문화에 대해 이를 존중해달라고 요구할 권리는 없다. 어떤 국가의 관점에서 봐도 일본 왕은 다만 왕일 뿐이다. 바로 그 때문에 전범들의 위패가 안치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일본인 자신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비칠지 몰라도 인근 보통국가들에는 결코 아니다. 일본은 태평양 밀림에서 살아가는 고립 문화도 아니요 브라질 우림의 원시 부족도 아니다.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국가를 표방한 지 150년이다. 하지만 정신세계는 여전히 전근대적 신정사회의 낡은 틀 속에 갇혀 있다. 일본은 언제쯤 세속 근대국가로 전환할 것인가. 그래야 같은 언어로 대화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