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범죄 저지르고도 84%가 執猶…누가봐도 불공정한 법 집행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서 경제민주화 1호 법안으로 제출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경법) 개정안을 놓고 논란이 많다. 개정안은 횡령 또는 배임 등의 사유로 인한 경제범죄에 대해 원천적으로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형량을 높였다.

현행 특경법에서는 횡령·배임 규모가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가중처벌을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법원이 형기의 2분의 1까지 작량감경(판사 재량으로 정상을 참작해 형을 감경함)해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있다. 더 나아가 대통령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자에 대해 특별사면 권한을 행사해 풀어주는 일도 많다. 이를 방지하자는 게 법안의 취지다. 도덕적 해이를 막고, 배임과 횡령 등 경제범죄를 줄이자는 차원에서다.

법의 공정성과 집행의 형평성을 국민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발의한 이 법안은 순전히 국민의 법 감정에 충실했다. 횡령이나 배임 등의 죄를 지었을 때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고, 특히 법을 적용할 때 모든 사람에게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법 감정이다. 문제는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재벌 등 특정집단 겨냥 안해…국민 법 감정에 충실한 것

[맞짱 토론] 범죄 저지르고도 84%가 執猶…누가봐도 불공정한 법 집행
현행법에 의한 적용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보면 2008년 횡령·배임 혐의를 받은 A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은 뒤 2개월 뒤 사면받았고, 같은 해 B회장 역시 1조 5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다음 사면됐다. 지난 1월 C회장도 300억원대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대기업 총수들도 있는데, 어느 누구도 이 분들이 형을 살고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시에 이런 현실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대기업 총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2007년 경제개혁연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7년까지 특경법상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149명 중 125명이 1심 또는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비율로는 83.9% 수준이다. 이쯤되면 대기업ㆍ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웬만한 경제범죄를 저지른 기업인들은 다 풀려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전형적인 유전무죄요 불편부당한 법 집행이다. 수백억원, 수천억원을 횡령한 기업인이 실형은커녕 불구속에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사면으로 풀려나는 현실은 누가 봐도 공정하지 않다. 높아진 국민의 법 감정이 이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특정집단인 대기업 총수만 겨냥한 입법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위헌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법안에 ‘대기업’이나 ‘재벌’ 등 특정집단은 거론되지 않는다. 개정안은 특정경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특정집단을 겨냥했기 때문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비판은 성립되지 않는다.

개정안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반대논리도 있다. 법원이 이를 고려해 집행유예 처분을 내리고 있는데, 그 가능성을 아예 없애버리면 기업 의사결정이 위축된다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기업이 유럽발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횡령이나 배임 같은 경제범죄가 마치 기업 경영 시스템상 어쩔 수 없는 문제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게 아닌가. 재계의 이런 비판에 한 지인은 말한다. “횡령 안하면 될 것 아냐!” 이 지인뿐만 아니라 대부분 국민들의 생각도 같을 것이다.

아울러 이 법안을 통해 우리나라 기업들이 선진적인 글로벌 우량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 적용이 엄격해진 결과로 기업인들의 배임이나 횡령이 줄어들면 투명한 기업 운영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된다면 기업의 유·무형 자산이 늘어나는 결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무턱대고 “기업을 규제한다. 재벌을 해체하려 한다”고 반박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또 오히려 대기업 쪽에서 먼저 자성의 목소리가 나와야 했던 문제라고 생각한다.

횡령과 배임 등의 경제범죄는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한 계산된 범죄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성과 윤리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결코 재벌해체나 대기업 때리기가 아니다. 재벌을 해체시키거나 대기업을 공격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다. 이런 형태의 범죄를 저지르고도 일반인들에 비해 월등한 재력을 이용해 피해액만 변제한 후 실형을 면하게 해주는 지금의 법 집행은 국민에게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돈을 벌면 된다’라는 왜곡된 법 감정만을 심어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자는 의도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다. 당연히 헌법의 정신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데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공정한 시장 경제 질서를 실천하고자 하는 논의가 왜곡되고 있어 안타깝다.

횡령 등 줄어야 기업도 이익…도덕·윤리 문제로 인식해야

헌법은 말한다. 대한민국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한다. 동시에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 분배를 유지하며,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고, 경제주체 간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개정안은 이런 헌법의 정신을 존중하자는 취지에서 발의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채택한 시장경제는 필연적으로 빈부(貧富)의 격차를 수반한다. 개정안에 서명한 의원들 중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 빈부의 격차를 인정하면서도 그 간격을 줄이고 폐단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것이 우리 헌법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의 경제민주화 논란이 대선을 앞두고 포퓰리즘적으로 흐르는 것을 찬성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특경법을 비롯한 경제민주화 논의는 대기업의 공과(功過)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다. 잘못은 고치되 공(功)을 인정하는 일까지 인색해서는 결코 안된다. 동시에 대기업의 공 때문에 대기업의 잘못을 고치는 데 소홀해서는 안된다. 대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는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대기업의 잘못을 바로잡고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실현시키는 데도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이는 포퓰리즘이 아니라 사회 정의의 실현이다.

민현주 < 새누리당 의원 >

△이화여대 사회학과 △미국 코넬대 사회학 박사 △코넬대 연구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경기대 대학원 직업학과 교수 △19대 국회의원(비례대표)
[맞짱 토론] 범죄 저지르고도 84%가 執猶…누가봐도 불공정한 법 집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