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원 한성기계공업 과장(35)은 올 들어 하루 4시간 이상 잔 적이 없다고 한다. 매일 오전 6시에 공장으로 출근, 현장 업무를 한 뒤 고객사 및 협력사 미팅까지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새벽 2시가 훌쩍 넘는다. 그럼에도 “몸은 고단하지만 한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자신의 꿈을 양보하고 회사에 들어와 일을 배우기 시작한 후 아버지 이덕수 사장(66)의 얼굴에 부쩍 화색이 도는 날이 많아져서다.

이 과장은 원래 예능 프로듀서(PD)가 꿈이었다. “넌 끼가 있다”는 주변 사람들의 격려를 자양분 삼아 대학 졸업 후에도 2년여간 꿈을 향해 전진했다. 그러던 중 2009년 돌연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창원으로 내려갔다. 우연히 아버지의 전화 통화를 듣게 된 게 계기였다.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자식 이기는 부모 있나. 안 내려 온단다’고 말씀하시는 걸 듣고 가슴이 시리더라고요. 저한테는 ‘너 하고 싶은 거 해야지’ 하셨거든요. 한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회사를 일구신 아버지를 위해 저도 무언가 해야겠구나 깨달았죠.”

이 사장이 한성기계공업을 세운 건 32년 전인 1980년이다. 이 회사는 동력을 원하는 강도로 조절·전달하는 기계장치인 초정밀 ‘기어(Gear)’ 전문기업이다. 다양한 산업용 기어 가운데 가장 만들기 어렵다는 공작기계(기계를 만드는 기계) 전용 기어를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다. 기어의 소재인 탄소강을 연마하는 것에서부터 정밀검사, 완제품에 이르는 전 공정을 외주 없이 자체적으로 소화하는 게 강점이다. 탄소강도 중국산이 아닌 국산만 고집한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최상급 공작기계용 기어 전량을 이 회사에서 조달하는 이유다.

이 사장은 “기어는 정밀도에 따라 0급에서 12급까지 총 13등급으로 구분된다”며 “한성은 가장 만들기 어려워 ‘기어의 꽃’으로 불리는 공작기계용 ‘0급’ 기어만 전문으로 생산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작기계용 기어 일괄생산 체제를 갖춘 건 한성이 유일하다”며 “국산 탄소강을 고집해 품질도 최상급”이라고 덧붙였다.

한성기계공업은 이런 경쟁력 덕분에 매해 성장하고 있다. 2009년 37억원, 2010년 72억원에 이어 지난해엔 12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올해도 전년 대비 20% 이상 성장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최근에는 일감이 넘쳐 증축도 진행하고 있다.

회사 업력은 올해가 32년째이지만 이 사장은 51년간 기어 한 우물만 파 ‘장인’으로 통한다. 13세 때부터 선박 엔진 모터를 만드는 회사에서 기어 기술을 갈고 닦아 32세 때인 1980년 창업했다. 국내에서는 드물게 당시 기어 1급 자격을 보유한 데다 현장 경험이 풍부해 이 사장에게 기술을 배워 나간 기술공들이 수백명에 달한다고 한다. 한성기계공업이 기계산업단지인 창원에서 ‘기어 최고기술자 사관학교’로 자리매김한 원동력이다. 그럼에도 이 사장은 “저는 기술교육만 했을 뿐 회사를 키운 건 직원들”이라고 공을 돌렸다.

올해로 경영수업 4년째인 이 과장은 전 세계에 ‘기어 한류’ 바람을 일으킨다는 목표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이 사장이 일본과 독일 등 기어 선진국에서 전량 수입하던 제품을 국산화한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국산 기어를 해외로 역수출하겠다는 각오다. 낮에는 공장에서 현장 경험을 쌓고 저녁에는 틈틈이 대학원에서 국제경영을 공부하는 등 ‘주경야독’할 수 있는 에너지는 이런 꿈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사업 영역도 점차 다각화해 나갈 계획이다. 풍력 조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특화된 기어를 개발하는 것은 물론 여러 기어를 하나의 프레임에 담을 수 있는 기어박스 시장에도 진출한다는 구상이다. 이 사장 부자(父子)는 “직원들과 힘을 합쳐 국산 기어의 세계화를 이뤄 한성기계공업을 100년 장수기업으로 키워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창원=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