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생일 선물 챙기는 걸 깜빡 잊은 아내가 사과했다. “여보, 미안해요.” 남편이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소. 내가 바라는 건 선물이 아니라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거란 말이오.” 곰곰이 생각하던 아내가 대답했다. “당신에게 선물을 사주는 걸로 할래요.” 배우자를 사랑과 공경으로 대하라는 금언을 지키는 건 쉽지 않다. 성장배경과 성격이 다른 남·녀가 만나 함께 살다 보니 크고 작은 감정의 골이 패일 수밖에 없어서다.

차라리 ‘멋진 그대’를 꿈꾸다 실망하기보다 정도껏 티격태격하는 게 현실적이란 얘기도 있다. 살다보면 ‘웬수 같은 정’이 쌓인다는 거다. 그래서 ‘부부싸움의 도(道)’라는 우스개도 나왔을까. 상대의 특기와 주먹의 강도를 미리 알고 덤비니 이를 지(智)라 한다, 서로 ‘나를 정통으로 때리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하니 이를 신(信)이라 한다, 상대가 아픈 표정을 짓는다 해도 과감히 무시하니 이를 강(强)이라 한다, 값나가는 살림을 부수지 않으니 이를 현(賢)이라 한다, 싸움이 끝난 뒤 맞은 곳을 서로 주물러 주니 이를 의(義)라 한다….

부부의 날(21일)을 앞두고 한 결혼정보회사가 설문조사를 했더니 부부싸움 할 때 가장 듣기 싫은 말로 “됐어, 말을 말자”(남 36.3%, 여 32.4%)가 꼽혔다고 한다. 이어 남자는 “이게 다 당신 탓이야”(18.6%), “갈라서! 이혼해!”(15.9%)’를, 여자는 “결혼, 후회된다”(23.7%), “당신이 그렇지 뭐”(20.9%)를 지목했다.

긴 세월 함께하다보면 얼굴 표정까지 닮는 게 부부다. 울고 웃고 분노하는 감정 표현 방식이 서로 비슷해지기 때문이란다(영국 리버풀대 연구진). 일부 병까지 닮는다는 연구도 있다. 김현창 연세대 교수가 3141쌍의 부부를 조사해 보니 대사증후군을 지닌 사람은 배우자도 같은 증상을 보인 예가 많았단다. 식성과 생활습관이 유사해진 결과다.

부부는 100점과 100점이 만나는 게 아니라 40점과 60점이 만나 100점을 향해 가는 것이라 했다. 가끔 감정이 헝클어져 싸우더라도 칼로 물 베듯 말끔히 복원될 여지를 남겨둬야 하는 이유다.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함민복 ‘부부’)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