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한양대 13대 총장으로 취임한 임덕호 총장이 제시한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동문과의 교류 활성화다. 공대로 대표되는 한양대 동문 선배들이 한국의 산업화를 이끌었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할 수 있는 길을 넓히자는 것이다.

임 총장은 이를 위해 취임 이후 최소한 1주일에 한 번은 동문들을 만나는 자리를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임 총장이 지난 7일 총장실에서 가진 총장·CEO 대담에 구자준 LIG손해보험 회장을 초대한 것도 동문 가운데 대표적 최고경영자인 구 회장의 경험과 식견을 듣기 위해서였다. 구 회장은 한양대 공대 출신으로 대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회=여러 분야에서 활약하는 동문들을 보시면 어떻습니까.

▷임덕호 총장=한양대가 올해로 벌써 개교 73주년이 됐습니다. 여기 계신 구 회장님처럼 기업을 일궈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분들도 많지요. 요소요소에서 한양인으로서 자긍심을 높여주는 분들이 계셔서 총장을 하는 게 아주 자랑스럽습니다.

▷구자준 회장=한양대는 공대가 워낙 유명하지만 요즘은 경영이나 인문사회계, 예능계 등에서 한양대 출신이 좋은 활동을 하고 있어 자부심을 느낍니다.

▷사회=대학과 기업의 관계가 갈수록 긴밀해지는 것 같습니다.

▷임 총장=인력 시장에서 대학은 인재를 제공하는 공급자이고 기업은 수요자입니다. 기업이 대학에 정확한 신호를 줘야 합니다. 기업이 ‘학점이나 토익이 전부가 아니다’는 신호를 보내주면 대학은 거기에 맞추게 돼 있습니다. 최근 도요타자동차 리콜 사태를 보면서 부품이나 원자재를 납품하는 협력업체의 중요성이 부각됐습니다. 요즘은 대기업이 협력업체를 직접 교육시키기도 하죠. 부품보다 훨씬 중요한 게 인재 아닙니까.

▷구 회장=총장님 말씀에 많은 부분 공감합니다. 저는 대학의 인재 양성과 기업의 대학에 대한 공헌이 선순환 구조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에서 길러낸 좋은 인재가 기업에 가서 기업 발전에 기여하고, 기업은 발전한 만큼 대학에 여러 가지 지원을 해서 더 좋은 인재를 키워내도록 하는 것이죠. 인사 담당자가 대학에 직접 어떤 인재를 키워 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산학협력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기업이 대학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서로가 원하는 걸 더욱 직접적으로 알 수 있으니까요.

▷사회=경제학자로서, 경영인으로서 ‘기업가 정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임 총장=25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쳐 보니 사회에 나가 성공한 제자들에게 모두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적극적이면서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입니다. 어떤 조직이든 그런 마인드를 가진 이들이 이끌어야 건강하고 발전 지향적입니다.

▷구 회장=젊은이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많은 부모들은 자식의 적성과 상관없이 공부만 좀 하면 무조건 의대를 보내려고 하죠. 이런 분위기에서 기업가 정신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부모들이 자녀를 너무 나약하게 키우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부모에게 용돈을 받으려고 한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사회=대학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임 총장=대학은 학생들이 사회봉사나 리더십 강좌와 같은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협조도 필요하죠. 기업 하시는 분들이 가끔 대학 졸업생들을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없다고 말씀들 하시는데 저희가 마냥 손놓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한양대는 교육과정을 짤 때부터 기업 인사 담당자들의 의견을 듣고 있습니다.

▷구 회장=어떤 대학을 나왔든 갓 졸업한 신입사원이 곧바로 업무를 잘 할 수는 없습니다. 신입사원 입장에서도 대학에서 생각했던 것과 직장에서의 실전은 차이가 많을 수밖에 없죠. 그러기 위해서는 산학협력을 통한 케이스 스터디가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사회=기업도 달라져야겠죠.

▷임 총장=채용할 때 학점이나 영어점수, 자격증과 같은 ‘스펙’을 너무 많이 보시는 것 같습니다. 스펙을 만들기 위해 휴학하는 학생까지 생길 정도면 조금 심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기업들이 각 부서나 업무에 맞는 인재 유형이 있다면 그런 유형에 맞는 기준으로 뽑는 것도 검토해 주셨으면 합니다.

▷구 회장=토익 점수가 높다고 일을 더 잘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명문대를 나왔다고 잘하는 것도 아니죠. 그런 조건은 ‘이 사람이 한 분야에 매진하는 자세는 됐구나’라는 걸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정도죠. 하지만 그런 계량화한 수치를 쓰지 않으면 일부에서 특혜 논란을 들고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풍토가 문제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성적이 조금 떨어져도 인성 좋은 인재를 뽑는 게 훨씬 유리한데도 말이죠.

▷임 총장=이런 차원에서 기업에서 인재를 채용할 때 추천제도를 부분적으로 도입해주기를 건의합니다. 교수가 학생을 추천할 수 있게 해주면 사제 관계를 건전한 방향으로 바꿀 수 있고 나아가 대학 교육과 입시까지 정상화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다만 교수들이 학생을 추천할 때는 단순하게 ‘품행이 단정하고’ 식이 아니라 적어도 A4용지 두 장 정도는 빽빽히 써주는 진정성을 보여야죠. 기업 입장에서도 교수 추천 신입직원들의 성과를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들어 객관성을 보장하면 되고요.

▷사회=청년실업이 사회적으로 점점 더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임 총장=공기업, 대기업, 금융기관 등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일자리 수가 1995년 412만개에서 2008년 372만개로 줄었습니다. 같은 기간 대학 진학률은 52.4%에서 83.8%로 올라갔습니다. 미스매치는 단순히 선호도 변화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입니다. 여러 해결 방안이 있겠지만 저는 젊은이들이 해외에서 길을 찾았으면 합니다.

▷구 회장=‘대학은 무조건 가야 한다’는 사회 가치관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대학을 안 가도 할 수 있는 일 많이 있습니다. 대학 졸업장은 인격이 아닙니다. 사정이 있어서 취업을 먼저 하고 대학은 나중에 갈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임 총장=맞습니다. 대학에서 배운 것으로 평생 일할 수 있는 시대도 지났습니다. 한양대는 선(先)취업 후(後)진학 활성화를 위해 큰 결단을 내렸습니다. 내년 신입생 중 서울캠퍼스는 공대에서 166명, ERICA는 공대와 경영대에서 총 77명을 기업체 재직자 특별전형으로 뽑습니다.

▷사회=회장님은 공대 출신 금융회사 CEO로서 ‘융합’을 직접 보여주고 있는데요.

▷구 회장=공학 전공이나 26년 엔지니어 경력이 경영에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행정가가 인문학을 모르면 안 되듯이 경영을 하려면 사회 문화뿐 아니라 공학적인 지식도 보완적인 작용을 합니다. 그런 면에서 한양대가 융합 전공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전략이라고 봅니다.

▷사회=융합 외에 또 어떤 인재 육성법이 있을까요.

▷임 총장=사회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사람 됨됨이, 즉 인성의 중요성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조직을 배려하는 인재가 필요한 것이죠. 한양대는 국내 최초로 2009년부터 리더십 인증제라는 것을 도입했습니다. 구 회장님도 멘토로 활동하고 계시죠.

▷구 회장=저 역시 리더의 조건으로 도덕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최근 저축은행 사태를 보면서 다시 한번 도덕성의 중요함을 느낍니다. 어렸을 때부터 정직과 신뢰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 구자준 회장은…모험 즐기는 최고경영자

구자준 회장(62)은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금성사에 입사해 26년간 정보기술(IT), 방위산업, 시스템 설계 등의 업무를 거친 엔지니어 출신 최고경영자(CEO)다. 1999년 LIG손해보험의 전신인 LG화재 부사장으로 선임되며 경력을 전환했다. 마라톤 풀코스를 10여회 완주하고 에베레스트와 K2 등반, 북극 탐험 경험도 있는 모험가다. 고(故) 구인회 LG 창업주의 동생인 고 구철회 LG화재 회장의 4남이다.


◆ 임덕호 총장은…'베스트 티처상' 최다 수상

임덕호 총장(58)은 한양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라이스대에서 경제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부터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년간 학교를 이끌던 김종량 전 총장(故 김연준 한양대 설립자의 장남)의 뒤를 이어 작년 3월 13대 총장에 올랐다. 학생들이 뽑는 ‘베스트 티처상’을 교내 최다인 5회 수상했다. 도시경제학 권위자로 서울시 분양가심의위원회 위원장, 한국주택학회장 등을 지냈다.


정리=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