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현장에선 벌써부터 “대법원 판결에 맞춰 각종 법정수당을 소급해 달라”는 노조의 요구가 늘고 있다. 한국노총에선 ‘정기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제수당과 정기상여금을 포함해 통상임금의 범위를 조정하고, 재조정된 통상임금에 따라 법정수당을 요구하라’는 지침까지 산하조직에 내려보낸 상태다.

기업들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줄 경우 근로자들은 3년치의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과 연차수당 퇴직금 등을 소급적용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기업이 근로자에게 추가 부담할 금액은 1인당 평균 2000만원 선에 달할 것으로 재계는 추산하고 있다. 근로자 1000명인 기업의 경우 200억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업으로선 엄청난 부담이다.

불법파견은 제도적 미비 탓

이러다 보니 재계에선 대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고 정부와 노조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부에선 일단 현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고려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도록 기존의 행정해석을 변경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한국노총 등 노동계에선 대대적인 소송까지 준비 중이다.

요즘 기업들은 죽을 맛이다. 가뜩이나 정치권과 정부에서 친(親)노동자 정책을 쏟아내는 마당에 법원까지 가세해 기업을 압박하고 있어서다. 기업이 3대 국가권력에 포위당한 형국이다. 이들은 겉으로는 헌법정신과 근로자의 권리보호, 공정성 등의 명분을 들먹이지만 실제로는 좌(左)클릭한 사회분위기에 휩쓸리는 듯한 느낌이다. 지난 2월 대법원의 불법파견 확정판결로 끝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근로자 소송사건은 독일과 일본 같은 선진국에선 아예 시빗거리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금지돼 있는 제조공정에 대한 파견근로가 이들 나라에선 허용돼 있기 때문이다. 제도적으로 파견을 불허함으로써 불법파견의 가능성을 열어 둔 채 법리만 따져서 나온 판결인 셈이다.

총선과 대선이 맞물린 올해 정치권의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은 도를 지나치고 있다. 야당은 현장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타임오프(유급근로시간면제) 제도 및 복수노조제도의 철회와 비정규직 사용제한 등을 요구하고 있다. 비정규직비율을 25%로 낮추고,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80% 수준으로 끌어올리라는 주문도 포함돼 있다.

19대 국회 때 더욱 힘들 듯

여권에서는 비정규직 사내하도급 문제와 관련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대기업의 비정규직 공시제 도입과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폐지 등을 담고 있다. 19대 국회에는 노동계 인사 15명이 대거 입성함에 따라 기업환경은 더욱 거칠어질 전망이다. 이들 중 13명은 야당, 2명은 새누리당 소속인데 대부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적을 두고 노동계의 요구를 관철시킬 것으로 보인다.

집권 중반 이후 ‘공정사회’ ‘공생발전’ 등을 주장해 온 이명박 정부는 정권 초기에 추진했던 고용 유연성 정책들을 슬그머니 내려놓은 상태다. 불법파견이 확인될 경우 직접고용 의무화를 비롯해 임금 및 근로조건 차별 개선 가이드라인 제정 등 비정규직보호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그 어디에도 기업하기 좋은 정책들을 찾아보기 어렵고, 지나치게 정치적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인상이 짙다. 더 많은 국민들이 복지혜택을 받으려면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성장에 초점을 맞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윤기설 한경 좋은일터연구소장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