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엎치락뒤치락 박빙의 차이를 보이자 표심을 얻기 위한 선심성 복지공약이 난무하고 있다. 야권은 1% 부유층을 지목해 대기업 법인세와 부유층 소득세의 대폭 인상을 내세우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여야 모두 비과세 감면 축소와 함께 과세포착률 제고를 통한 세수 확충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종교인 세금문제가 갑자기 불거진 것은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한 방송사와의 대담에서 국민개세주의를 언급하면서 “종교인의 납세의무는 당연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 발단이다. 박 장관의 원칙론이 말꼬리를 잡히면서 “올해 세법개정안에 반영한다”는 언론 보도까지 등장했다. 이에 재정부는 서둘러 보도자료를 내고 “종교인 과세에 대한 원론적인 입장을 언급한 것이며 적용방법, 시기 등은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종교인이 종교활동과 관련해 어떤 명목으로라도 금품을 수령했다면 사업소득 혹은 근로소득 범주에 해당된다. 신성한 종교활동을 돈벌이 영리사업으로 치부할 수는 없으니 소득구분상 근로소득에 포함시키는 것이 가장 적절한 대안이다. 그동안 일부 법원에서 생활보조금 성격의 지원만 받는 부목사는 근로자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놓았지만 이는 보호대상 근로자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려는 근로기준법 해석의 문제이며 과세소득을 규정하는 세법과는 관련 없는 판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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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소득 범주에 포함되는 종교인 금품수령을 과세대상에서 제외시키려면 비과세대상으로 명확히 열거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세법규정에는 ‘종교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다. 일부 종교인은 종교활동은 근로가 아닌 봉사이므로 사례금 또는 목회비 명목으로 수령하는 금품은 근로소득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1994년부터 성직자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해 납부하고 있으며 영락교회를 비롯한 대형 교회도 오래전부터 자진해서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 종교인 금품수령은 신성한 봉사활동 사례비로서 세금부과를 거론할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은 중증 장애인을 돌보는 사회복지사 및 간병인 등과 같이 열악한 환경에서 희생하며 적은 보수 중에서도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종교인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것은 국세청장 직무유기라며 일부 시민단체가 고발장을 제출했고 국세청은 2006년 4월 당시 재정경제부 세제실에 종교인 과세 관련 질의서를 송부했다. 질의 내용은 종교인이 성직수행 종교활동에 따라 받는 보수가 근로소득에 해당하는지, 소득세법상 과세조항이 없으므로 비과세로 봐야 하는지, 대가 없이 받는 증여세 과세 대상인지를 가려달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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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질의에도 함축돼 있듯이 종교인 소득이 근로 대가라면 소득세 과세대상이고 대가성 없이 받은 금품이라면 소득세보다 세금부담이 훨씬 무거운 증여세 과세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상속세 및 증여세에 대한 완전포괄주의를 법제화했기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금품을 수령할 경우 대가성이 있어 소득세 과세대상에 포함되는 사항이 아니라면 당연히 증여세 과세대상이다. 일부 종교인의 주장처럼 근로행위가 아닌 봉사 대가라 하더라도 소득세와 증여세 중 하나에 대한 납세의무를 회피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중앙 통제가 강력한 천주교나 대형 교회 및 유명 사찰을 제외한 대부분 종교단체의 재정사정은 매우 열악하다. 재정자립이 어려운 경우 상급단체 또는 대형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 관례다. 종교계 관계자는 미자립 단체 비중이 80%가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대다수 미자립 단체 소속 종교인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근로소득 면세점에 미달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종교인에 대한 과세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더라도 세금수입은 크지 않고 오히려 저소득 근로자에게 부여되는 근로장려금 수혜대상은 늘어날 전망이다.

근로소득세는 고용주가 원천징수해 납부하는 세금이다. 일부 종교인이 주소지 세무서를 방문해 자신이 납부할 근로소득세가 얼마인지를 문의하는 사례도 생겨 세무당국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종교단체가 체계를 갖춰 등록번호를 교부받고 회계시스템도 제대로 운영해야 종교인 소득에 대한 소득세 원천징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종교인 세금문제는 종교단체 회계의 투명성과 직결된다. 종교단체의 회계 투명성이 극히 미약한 상황에서 종교인 세금문제는 논의만 무성한 가운데 장기간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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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단체는 민법 제32조에 의해 설립된 비영리법인으로서 수익사업을 영위하지 않는 한 법인세가 과세되지 않으며 고유목적사업에 사용하는 부동산에 대해서는 취득세와 3년 이상 사용 시 양도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도 면제된다. 종교단체가 국세청에서 고유번호를 교부받으면 헌금이나 시주에 대해 기부금 소득공제에 적법한 영수증을 발급할 수 있다. 소득세 또는 법인세 감면 혜택이 부여되는 종교단체 기부금은 사용처에 대한 투명한 관리가 필수적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허술하다.

종교단체의 헌신적 사회봉사에 대한 평가는 매우 높다. 그러나 불투명한 회계시스템으로 인한 불미스러운 다툼도 빈발하고 있다. 종교단체가 사회적 공헌에 상응하는 투명성을 자발적으로 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종교단체 관리를 위한 종교법인 법률 제정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세금 혜택이 부여된 기부금 사용에 대해서는 사회복지법인 수준의 투명성이 유지되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

미자립 교회 등 회계시스템 운영이 어려운 경우가 문제될 수 있다. 영세한 교회 목회자의 경우 최저생계비 이하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생계비 지원 등도 거론된다. 미자립 교회를 상급 단체 또는 후원하는 대형 종교단체에 위탁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이런 시스템이 확립되면 영세 종교단체 소속 종교인의 사회보험 가입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복지수요 급증으로 국민의 납세의무가 중요한 사회봉사로 자리매김하는 상황에서 종교인 스스로 납세의무 이행에 앞장서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 교수

△미국 조지아대 경영학박사 △한국·미국 공인회계사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 △국세청 국세행정위원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