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병적으로 두려워하는 ‘포비아’(phobia )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유형화된 것만도 500가지가 넘는다. 폐소 고소 광장 공포증이나 뱀 거미 쥐 등을 싫어하는 동물공포증은 우리 주위에 흔하다. 대중 연설이나 발표를 과도하게 꺼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러시아 사람을 보면 몹시 불안해하거나 느닷없이 발기할 것을 겁내는 공포증도 있다. 심지어 달이나 구름, 나무를 보면 공포를 느낀다는 사람도 더러 있는 모양이다.
가장 고약한 건 공황장애(panic disorder)다. 특정 상황에 놓이면 가슴이 터질 듯 두근거리거나 어지럽고,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해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증상이다. 단순히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빨리 뛰는 불안 장애와 달리 극한의 공포로 숨이 턱턱 막히는 게 특징이다. 이런 증상이 10~20분 정도 갑자기 나타났다가 가라앉는 경우가 많다. 환자의 반은 터널 엘리베이터 비행기 등에서 남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광장공포증이 동반된다.
위험한 상황이 생겼을 때 반응하도록 알려주는 뇌속 알람시계 ‘청반’의 오작동이 원인이라고 한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자꾸 쌓이다 보면 절박한 상황이 아닌데도 뇌가 위험이 있다고 착각해 잘못된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잘 걸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경규 김장훈 차태현 김하늘 등 연예인들이 많이 걸려 ‘연예인 병’으로도 불린다.
우리나라 공황장애 환자가 지난해 5만9000여명으로 5년 만에 60%나 늘어났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국민건강보험공단). 증가율이 연 평균 10.7%로 꽤 높다는 게 눈에 띈다. 약을 먹으면 몇 달 만에 치료되지만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는 한 재발우려가 있단다. 예방을 위한 전문가 조언은 ‘다채로운 여가활동으로 평소 긴장을 풀어라’ 정도다. 생존경쟁 속에서 어차피 스트레스를 피하기는 어렵다면 살살 달래가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