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변동 영향 없음을 재무제표에 반영하기 위해
외화자산 불어난 만큼 외화부채로 잡아 상쇄해야
기축통화 쓰는 美·EU는 환율변동 신경쓸 필요없어
지역통화 사용국 입장…국제회계기준에 반영 필요
#환율 따라 오르는 자산과 이익
2008년 금융위기 때는 1년 남짓한 기간에 1달러에 대한 환율이 944원에서 1533원까지 60% 치솟았다. 환율 변동은 기업 재무제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기업이 1억달러의 외화자산을 갖고 있을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자산은 재무제표에 한화로 환산돼 표시하는데, 환율이 60% 치솟으면 한화로 표시된 자산금액도 60% 증가하고 동시에 같은 금액이 이익으로 표시된다. 즉, 환율이 1000원에서 1600원으로 상승하면 자산과 이익이 각각 600억원 계상된다. 그런데 이 자산의 증가와 이익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질 수 있다.
이는 기업이 영업활동을 해서 번 것이 아니라 단순히 환율이 올랐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기업의 영업활동이 매우 저조했다고 하더라도 단순한 환율 상승으로 인해 많은 이익이 발생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또 두 기업이 서로 다른 금액의 외화자산을 갖고 있다면 환율 상승이 두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기 때문에 기업의 성과를 비교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은 1억달러의 외화자산을 갖고 있으나 다른 기업은 외화자산이 없다.
앞의 기업은 환율이 60% 상승함에 따라 외화자산의 60%만큼 자산과 이익이 증가하지만 두 번째 기업은 환율 변동에 따른 자산과 이익의 변화가 전혀 없다. 이런 일이 실제로 발생했는데 조선업에서 항상 2위를 하던 기업이 2008년 말 잠깐 동안 부동의 1위 기업을 뒤로 제치고 자산순위에서 1위로 등극한 적이 있다. 이유는 더 많은 외화자산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화자산이 아니라 외화부채를 갖고 있을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예를 들어 기업이 1억달러의 외화부채를 갖고 있을 경우 환율이 1000원에서 1600원으로 60% 치솟으면 한화로 표시된 부채금액도 600억원 증가하고 동시에 같은 금액이 손실로 표시된다. 기업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단순한 환율 상승 때문에 거액의 부채와 함께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에 이 외화부채의 만기일이 2년 뒤인데, 2년 뒤 환율이 안정돼 1000원으로 회복됐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2년 뒤 실제로 지급하는 현금은 1000억원인데, 현재의 재무제표에는 부채 1600억원으로 기록돼 있기에 실제로 지급하게 될 액수와 현격한 차이를 보이게 된다.
#환율 변동, 기업의 대비책
이런 환율 변동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방지하기 위해서 기업은 둘 중에 한 가지를 할 수 있다. 하나는 환율이 급상승하기 전에 외화부채를 미리 갚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많은 추가 비용이 따른다. 계약을 취소하기 위한 위약금을 물어야 하며, 환율이 예상 밖으로 하락한다면 그에 따른 이익을 잃게 되는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이런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브라질의 한 회사는 많은 장기 외화부채를 갖고 있었는데, 2008년 환율 상승이 예상되자 외화부채를 무리해서 모두 상환했다. 환율 상승으로 인해 보고해야 할 손실이 너무 클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방법은 미래에 결제할 환율을 고정시키는 별도의 파생상품을 계약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억달러의 외화자산을 2년 뒤에 현재 환율과 같은 1000원에 결제하기로 계약을 하는 것이다. 이를 헤징(hedging)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문제가 있다. 헤징을 하면 환율이 변동한다고 해도 이에 대한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기업이 환율 변동에 따라 영향을 받지 않음을 재무제표에 보고해야 한다. 이를 위해 환율이 60% 상승하면 외화자산을 600억원 증가시키면서 같은 금액의 이익을 계상하는 동시에 외화부채를 600억원 증가시키면서 같은 금액을 손실로 계상한다. 이렇게 하면 이익과 손실이 서로 상계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그런데 여기서의 문제는 환율 변동을 제거하기 위해 헤징을 한 회사는 환율이 상승한 만큼 자산과 부채가 모두 증가하는 반면, 헤징을 하지 않은 회사는 자산만 증가하고 부채는 증가하지 않게 된다. 이는 헤징을 함으로써 외환 변동 위험을 제거한 회사는 오히려 많은 부채를 계상하고, 헤징을 하지 않음으로써 외환 변동 위험에 노출돼 있는 회사는 부채를 계상하지 않는 모순을 낳게 된다.
#국제회계기준과 공생하는 법
그런데 환율 변동에 따른 이렇게 많은 문제점을 국제회계기준을 제정하는 주요국인 미국이나 EU 국가들은 알고 있을까. 그들은 이런 문제점을 알지 못한다. 달러나 유로라는 기축통화를 사용하고 있어 환율 변동에 따라 재무제표의 금액을 환산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이다. 위에서 설명한 문제점들은 우리나라와 같이 지역통화(local currency)를 사용하기에 외화자산과 부채를 환산해야 하는 나라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국제회계기준의 많은 부분은 상당 기간 전에 기축통화를 사용하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와 같은 지역경제 특성이나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죽으나 사나 국제회계기준과 함께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방향은 분명할 것이다. 최선을 다해 우리의 문제점과 함께 우리의 특성, 경제 환경을 국제회계기준위원회에 알림으로써 조금이라도 더 우리에게 맡는 기준을 가질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정리=이주영 가치혁신연구소 연구원 opeia@hankyuing.com
한종수 이화여대 경영대 교수 jhan@ewha.ac.kr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회계학 석사 △미 피츠버그대 회계학 박사 △공인회계사, 금융위 회계제도심의위원회 위원, 한국회계학회 부회장, 한국회계기준원 초빙연구위원 △저서 ‘IFRS중급회계’